19대총선 결과를 바라보며 同時代史를 헤치며

정권심판 대 대선전초전

선거 결과는 충격적이다. 결과적으로 보아 유권자 대다수는 이번 총선을 '정권심판의 장'이라기보다는 '대선 전초전'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줄곧 이번 총선이 전자의 의미를 띠었다고 생각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었는데, 내 생각과 기대가 현실과는 어긋났던 것이다. 한국현대정치사를 공부하는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공부가 되는 경험이다. 한국현대정치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역사적 시각과 현실정치를 파악하는 안목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좀 더 사려 깊게 생각하며 공부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보아 이번 선거가 '대선 전초전'이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야권연대는 질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현 정권 심판이라는 네거티브구도에 매몰되어 생산적인 정치적, 정책적 의제를 내세우는 데 소홀했다. 지난 지방선거 등에서 야권연대가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가 기본적인 반MB구도에 무상급식이라는 진보적 의제를 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데 실패했다. 또한 박근혜과 맞장을 뜰 수 있는 대표주자가 없었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내 생각에는 야권연대가 네거티브구도에 매몰된 이유는 아무래도 이른바 '나꼼수 현상'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꼼수는 그야말로 '반MB 네거티브'의 전형이다. 이명박 정부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 대중의 커다란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네거티브를 넘어 어떠한 생산적인 의제를 내세우지는 못했다. 사실 내세우지 '못했다'라고 하기보다는 그러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술자리 뒷담화' 비슷한 나꼼수에게 네거티브 이상을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나꼼수가 아니라 거기에 매몰된 야권연대의 선거전략이었다.

의제 형성과 관련하여 통합진보당의 책임은 뼈아프다. 사실 이러한 문제에 가장 유의하며 노력해야 하는 주체가 바로 진보정당 아닌가? 선거정국 동안에 통합진보당은 이런 저런 공천 문제와 곧이은 이정희 후보 사퇴 문제로 내홍을 겪느라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고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야권연대가 시간적으로 촉박한 일정이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변명일 뿐이다.

대표주자의 부재는 사실 위에서 얘기한 구도 측면보다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진보개혁진영의 대표주자는 사회적 의제 형성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등장하게 마련인데, 후자가 부족하니 전자가 등장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박근혜처럼 전국을 커버하는 대표주자가 없었기 때문에 야권연대의 바람을 일으키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의 앞날

통합진보당은 13석으로(지역구 7석 + 비례 6석) 진보정당사상 최대 의석을 얻었다. 다만 정당득표율 10.3%는 만족스럽지 않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단독으로 얻어냈던 득표율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때는 참신성이 무기였지만, 이번에는 의제형성이 무기여야 했다. 앞으로 통합진보당의 과제는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고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실력을 보여주는 일이다. 또한 19대 국회에서 수적 열세를 벌충하는 전투력을 보여주어야 할 임무도 가지고 있다. 전투지휘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노회찬과 심상정 두 명이 모두 당선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아직까지 '화학적 결합'이 잘 되지 않고 있는 당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둘의 역할은 막중하다. 노심 두 지휘관을 필두로 한 원내의원단의 활약에 따라 당의 존속 여부가 결정될 터이다.

야권연대의 앞날은 불안하다. 과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책임론과 내부분열을 추스르며 의제형성과 대권주자레이스라는 까다로운 과제들을 감당해나갈 수 있을까? 선거결과에 크게 실망한 야권연대 지지 대중의 마음을 다독이며 계속 연대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지금으로선 야권 정치인들의 분발을 기대할 뿐이다.

진보신당

예상대로 진보신당은 3%를 넘기지 못했고, 더욱 처참하게도 2%조차 넘기지 못하여 등록말소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식을 보니 통합진보당에 참가하지 않은 사회세력을 아우르며 재창당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두 진보정당이 완전히 통합할 길은 없는 것일까? 일단은 상대적으로 '강자'인 통합진보당이 실력을 보여주는 가운데 통합의 명분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원내에서 진보정당의 실력을 보여주며 통합노선이 효과적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덧글

  • 라마르틴 2012/04/12 17:04 # 삭제 답글

    정권심판론으로 반사이익 얻을려는 전략 자체가 병신이지. 아무리 여당이 싫다고 과거 친노 그룹에 표를 준다는 게 말이 되나. 그래서 난 투표 안 했지.
  • 자유로픈 2012/04/12 22:44 #

    기꺼이 지지할만한 정치세력이 없어서 답답하시겠습니다...
  • 2012/04/12 17: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자유로픈 2012/04/12 22:50 #

    민노당의 흑역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저 같은 과거사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점점 진보정당에서 많아져야 진보통합이 가능해질런지요.,..일단은 통합진보당이 잘 해야겠죠.
  • historyjs 2012/04/13 01:33 # 답글

    통합진보당은 10석 이상의 제3당이 되었고, 대선에서도 민주통합당과 연대를 할 것 같은데요. 짧은 시간이지만 대선 전에 북한에 대한 입장을 어느정도는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옮겨적을 수는 없지만 지난 번에 이정희 대표의 북한에 대해 비판하지 않겠다는 식의 이야기는 곤란합니다. 흘러가는 말이라도 민주당 정도의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발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요. 자기네들이 정부여당도 아닌데 말입니다.

  • 자유로픈 2012/04/14 20:15 #

    어제오늘 기사를 보니 통진당의 로켓성명 논평이 입길에 올랐군요. 사실 통진당 입장에선 이 사안은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보다 최대한 쉬쉬하며 넘기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겠지요. 남북문제에선 북한민주화 관련 구도보다는 예전 지방선거 때처럼 '전쟁과 평화'구도가 통진당 포함 야권 전체에게 유리한 구도이니까요.
  • 나아가는자 2012/04/13 10:10 # 답글

    전 사실 이번 총선을 보면서 정말 많이 답답했습니다. 그렇지만, 심판이 아닌 대선전초전인 성격의 총선이었다면 이만큼도 많이 얻은것이라 할 수 있겠죠.
    사회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의무의료와 의무교육-보육의 확대라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사실 대안이 부족했다기보다 대안을 제대로 국민들에게 홍보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곧 대안의 현실성과 효과를 계속 어필했어야하는데 홍보를 소홀히하다보니 '복지망국론'이라는 조중동의 프레임에 말려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뼈아프게 반성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노,심 두 사람은 믿을만 하지만, 문제는 통합진보당의 다른 비례대표들이 그 둘만큼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가 걱정됩니다. 일단은 지켜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겠지만요.
    - 어쨌든 총선은 끝났고...총선은 또 다시 4년후라는 길고 긴 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정치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진보의 기초를 다져나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언론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도록 경향신문 구독운동 같은 것을 벌이는 것 말이죠. (이리저리 말이 많았네요. 아직도 충격이 잘 가시지 않는 모양입니다.)
  • 자유로픈 2012/04/14 20:22 #

    어디선가 봤는데 누군가 '정책에는 리바이벌이 없다'고 표현했더군요. 그말이 맞죠.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이전에 그다지 논의되지 않았던 '신선한' 정책이어야 하니까요. 무상시리즈나 반값등록금은 이전 선거들에서 써먹었으니, 이번 선거에서는 효과가 적었죠.
    직접행동이야 진보진영에서는 늘 해오던 일인만큼, 앞으로도 물론 계속 해야겠죠...국면마다 사안은 달라지겠지만요. 하여튼 당분간은 대선 때문에 힘겨루기가 워낙 심해질 테니까, 차분하게 진보의 기초를 다지는 일에 신경쓰기는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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