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몰래 써 본다, 자유민주주의? 역사교과서문제 파고들기

요 며칠 주민투표로 시끄러운 중에 역사교과서 문제가 재차 불거졌다.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문제이니만큼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 포스팅해본다.

1. '금성교과서'에게 빛이 찾아올 날은 언제인가

법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명령 적법" (연합뉴스, 2011-08-16)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작된 교과서 때리기의 첫 타겟, '금성교과서'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교과부는 지난 2008년 뉴라이트가 한창 금성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비난해대는 와중에, 금성교과서의 일부 내용과 문장을 바꾸라고 '수정 명령'을 내렸다. 교과서 저자들은 이 처분이 실질적인 '검정'인데도 불구하고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며 취소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이번 2심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로 뒤집혔다. 결국 3심까지 갈 예정인데,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마무리될 수는 있을까?

바라건대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대법원이 교과서 저자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비합리와 비상식에 의해 상처입은 금성교과서와 그 저자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으리라.

2. 타는 목마름으로 남 몰래 써본다,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 → '자유민주주의', 역사교육과정 변칙 수정(경향, 2011-08-15)
"민주주의 자체로 충분한 개념, 수식 불필요"(경향, 2011-08-16)
"한국사, 자유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가 맞다"(한겨레, 2011-08-16)
뜨거운 '자유민주주의' 논쟁, 역사교육과정 개정안 후폭풍(경향, 2011-08-17)
역사교과서 '대한민국=자유민주주의' 표기 당연하다(문화일보 사설, 2011-08-17)
MB정부의 '역사 거꾸로 세우기' 사례들 (시사인, 2011-08-18)
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꿨나(한겨레, 2011-08-22)
이하 여러 기사들 생략!! ^^;

2011년 여름을 싸늘하게 식혀준 뉴라이트와 교과부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납량특집은 개정 역사교육과정 수정이었다. 교과부는 2009개정교육과정 중 역사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연구위원들도 모르게 자의적으로 '민주주의'란 단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꿔버렸다. 교과부는 '한국현대사학회'가 공청회에서 의견을 전달하여 '관계기관'들과 협의한 후 바꿨다고 밝혔다. 정작 교육과정을 만든 연구위원들도 몰랐는데 '관계기관'들과 협의했다니 재주도 참 좋다.

민주주의에 '자유' 하나 덧붙이는 것은 별 것 아닌 듯해도 현대사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완결된 개념이 아니고, 어떤 다른 정치, 경제이념과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제 의미를 갖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개념이기 때문에, 한국의 민중이 어떤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실천해왔느냐에 따라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민주주의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달라진다.

자유민주주의, 분명 한국현대사에서 누군가는 이것을 말하고 실천하려 노력했을 터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을 리 없다. 뉴라이트의 사랑방 모임인 '한국현대사학회' 측은 '자유민주주의'를 "공산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닌,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민주적 절차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무려 시장경제라니, 정치학에 과문한 나도 자유민주주의를 이렇게 협애하게 정의하는 꼴은 처음 본다. 나름대로 마음이 넓다고 알려져 있는 자유민주주의 개념이 우왕우왕 울고 도망갈 일이다.

자세히 얘기하려면 끝이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위에서 얘기했듯이 민주주의는 역사적 개념이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에서 '자유'는 두 가지 의미를 가졌다. 어떤 이들에게는 반공반북의 상징어였던 반면, 또 어떤 이들에게는 반독재민주화의 상징어였다. 지금 교과부와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어떤 자유이고 누구의 자유인가.

또 헌법 가지고 말들이 많은데, 제헌헌법을 한 번 보자. 제헌헌법 제안 설명에서 서상일은 "헌법을 통해 '민족사회주의'을 이룬 감이 있다"고 발언했다. 무려 '자유'가 아닌 '민족'이고,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란다. 제헌국회는 무슨 반국가단체이고, 당시 한국민주당의 중진이었던 서상일은 반국가헌법의 아버지였나? 꼭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해야만 교과서에 실릴 수 있어야 하는가...

그래도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염치는 있었는지 한국현대사에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며 이승만이 아닌 김구를 들먹였다.(관련 기사) 그래, 그 정도 염치라도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ㅜㅜ

3. 교과서야, 고생이 많다...

정말 하늘의 보살핌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한국사회의 시민들이 정의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질기게 싸워왔기 때문인지, 한국사학자들은 대부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정치성향 면에서도 진보-개혁적인 경우가 많고, 학계의 분위기 역시 다양한 역사 해석에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역사학계의 분위기가 지극히 합리적인 이야기를 중시하는 덕에, 뉴라이트 학자들은 도저히 학계에 발붙일 여지가 없다. 한국사회 시민들에게는 큰 복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기 내내, 학계에서 빰 맞은 뉴라이트가 애먼 역사교과서에 화풀이를 하고 있다. 연구와 논쟁을 통해 합리적으로 역사 해석을 바꾸려 하지는 않고, 치졸하게 권력을 동원하여 억지로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오염시키려 하고 있다. 마치 1970년대 말에 이른바 재야사학자(유사역사학 논객)들이 일부 극우 군인들과 야합하여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치려 했던 과거가 되살아 난 것 같다. 그때는 주로 고대사가 주된 전장이었지만, 지금은 근현대사가 그러하다.

학문적으로는 제대로 대들 깜냥도 안 되는 뉴라이트이지만, 그래도 역사교과서 문제에는 학계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사 학계가 대중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 빈틈을 뉴라이트는 계속 파고들어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뉴라이트를 욕하는 것은 오히려 작은 일이다. 더욱 중요한 과제는 역시 역사학계가 대중과의 소통을 더욱 활발히 모색해 나가는 것이다. '유사역사학'과의 투쟁은 끝이 없다. 항상 긴장을 풀지 말고 대처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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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루치까 2011/08/25 23:14 # 답글

    '인민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으로서 '자유민주주의'만을 강조하여 민주주의의 의미를 협소하게 하고 담론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나저나 변변한 학술지도 없는 학회의 의견을 국가기관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니, 이 것도 크게 문제라고 보지만요.
  • 자유로픈 2011/08/26 09:33 #

    꼭 '인민민주주의만' 마음에 들지 않겠어요? 자기들이 싫어하는 건 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라고 생각하겠지요. 한국현대사학회가 뉴라이트들의 사랑방 모임이라는 걸 교과부가 모를리 없지요. 당파적으로 놀려고 해도 수준을 맞춰가며 해야지, 교과부는 정말 자신의 품격을 스스로 깎아먹고 있어요.
  • 나아가는자 2011/08/26 00:38 # 답글

    민주주의의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국민적 합의의 대상인데, 저런식으로 얼렁뚱땅 원래 그렇게 했었다는 식으로 한다음 자신들의 의견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발상은 참으로 어리석어보입니다. 토론과 설득이라는 어렵지만 옳은 길을 버리고, 쉬운 길을 가려는 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리가 만무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유로픈 2011/08/26 09:38 #

    제가 보기에는 결코 '만무'하지는 않습니다. 1970년대말~80년대 초 유사학사학 또라이들이 일으킨 역사교과서 파동 때에도, 비록 학계는 그들의 주장을 논파할 실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투쟁에서 밀리면서 결국 국사교과서 수정 과정에서 그들의 주장이 일부 들어가게 되었지요. 그 해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금도 저들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하지만, 정치투쟁에서 밀리면 교과서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해요. 사실 제 주변만 봐도 뉴라이트 욕은 쉽게 면서도 까짓게 뭘 하겠냐고 무시하는 걸 보면 조금 안타깝죠...
  • 웃기고있네 2011/09/03 20:41 # 삭제 답글

    맹바기정부가 금성을 비롯한 교과서는 북 전체제의체제에 대한 비판희석과 자학사관으로 일관되었다는건 끊임없이 지적된 사안이며 전부 극우 뉴라이트 계열 목소리로 치부할 수 있겠나
    (뭐 독도 중간수역으로 도장찍은 슨상님은 그냥 넘어가지만) 참고로 맹바기 정부가 승인한 교과서는 기존보다 더 왼쪽으로 나아간 즉 빨갱이사관으로 가득한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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