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단상 한국사를 보는 시각

오늘은 10월 3일 개천절이었단다. 일요일이라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짧게 개천절 단상 한 편. 시간만 있다면 자세하게 쓰고 싶은데 다음을 기약해야 할 듯.

개천절은 명색이 우리 '민족'의 건국일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인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기념하지 않는 현실에서 개천절은 유일하게 우리가 기념하는 건국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뉴라이트 진영에서 주장하는대로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기념하게 된다면 개천절은 강력한 경쟁자를 맞이하는 셈이다.

한편 개천절은 또 다른 강력한 경쟁자를 가지고 있다. 바로 성탄절과 부처님오신날이다. 성탄절과 부처님오신날이 각각 기독교와 불교의 가장 큰 경축일이라면 개천절은 대종교(大倧敎)의 가장 중요한 경축일이기 때문이다. 대종교의 교세가 처량할 정도로 약해진 오늘날에는 개천절이 본래 대종교의 경축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기 십상이다.

대종교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종교였다. 해방 직후 조선사회에서는 기독교, 불교, 유교, 대종교, 천도교를 일컬어 '5대 종교'라 불렀고, 때로 천주교를 포함하여 '6대 종교'라 부르기도 했다.

대종교는 주로 중국에서 활동한 민족주의자 항일운동가들이 신봉하던 종교였기 때문에 민족주의 성향이 짙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대종교의 문화가 국가제도에 반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국가의 공식문서에서 단기를 사용한다든가, 바로 개천절을 국가의 공식 국경일로 정한다든가 하는 것이었다.(성탄절은 국경일이 아닌 국가 지정 공휴일의 위상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대종교가 위세를 발휘한 이유는 대종교 소속의 인사들이 국가의 주요 직책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부통령 이시영, 국무총리 겸 초대 국방부장관 이범석, 문교부장관 안호상, 심계원장(오늘날의 감사원 격) 명제세, 감찰위원장 정인보, 2대 국방부장관 신성모 등이 모두 대종교 소속의 인사들이었다. 제헌국회 내에도 대종교 소속의, 혹은 대종교에 친화적인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종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교세가 축소되었다. 이승만과 기독교세력의 견제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타 종교세력을 배척해나갔다. 심지어 기독교세력 내부에서도 자신의 인맥이 아닌 세력(흥사단 계열 등)을 배제하는 등 독선이 심했다. 그는 대놓고 기독교에 각종 정치적, 정책적 특혜를 베풀며 대한민국을 기독교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정부수립 후 벌어진 심각한 정치투쟁 과정에서 대종교 소속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축출되었다. 이승만은 1952년 이범석이 이끄는 족청계(조선민족청년단 계열)와 연합하여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킨 후 바로 배신하여 1953년에 전면적인 족청계 축출작업을 벌였다. 1953년 족청계가 몰락하면서 대종교는 교세를 확장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를 잃은 셈이었다. 1950년대 기독교는 눈부신 속도로 교세를 확장하여 신도 수로 보아 불교에 이은 두 번째 종교의 위치를 차지했지만, 대종교는 재정난, 인물난에 허덕이며 교세를 잃어갔다. 어찌 보면 똑같이 이승만에 탄압 받았으되 여당(자유당)이 아닌 야당(민주당)의 편을 들면서 생존의 길을 모색한 천주교와는 대비되는 운명이었다.

지금도 개천절은 명색이 국경일이고, 정부 차원에서 기념식을 거행한다. 하지만 이미 개천절은 '기억'이 사라진 화석화된 국경일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개천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기념하려는 이가 얼마나 될까. 차라리 종교적, 사회적 파급력을 따져보았을 때 지금도 공휴일에 불과한 성탄절과 부처님오신날이 한국사람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날이다. 이제는 개천절을 역사화하여 역사의 강물로 흘려보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러면 휴일이 하나 없어지는 재앙이 일어나는 셈이니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

정부수립 초기 대종교와 기독교의 갈등에 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고했다. 강인철, 2009,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기독교적 성격>, <한국기독교와 역사>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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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초록불 2010/10/03 22:16 # 답글

    대종교는 임시정부에도 영향력이 엄청났지요.
  • 자유로픈 2010/10/04 00:37 #

    대종교는 중국 관내 독립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었다고 알고 있어요. 자세히 알아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많을 것 같은데 대종교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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