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기억 - 1946년 3월 1일 한국사를 보는 시각

조선공산당, 3.1운동 27주년 기념문, <민주주의 조선의 건설>, 1946
 

  화려한 3천리 강산과 선량한 조선민족은 일본제국주의의 철제 하에 무참히도 유린되었다.

  노동력의 최대한을 착취하고 인권의 최후까지도 박탈한 야수적 일본제국주의의 기반을 벗으려는 힘은 미약하나마 태동하였다.

  1917년 러시아혁명의 성공은 자본주의 제국의 피압박계급과 아울러 식민지반식민지의 약소민족에게 자유해방의 경종이었나니 전 세계를 풍미한 혁명의 조류는 조선의 천지를 진감(震憾)시키고 민족자결의 전망은 3천만 조선민족을 분기시켰던 것이다.

  3·1운동은 일본제국주의에게 정면으로 반항하는 해방운동의 봉화였으며, 3천리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독립만세는 자유를 부르짖는 3천만 민족의 외침이었다. 이것을 지도하고 조직할 주체가 결여되었으며 민중생활과 요구를 운동에 연결시키지 못하였으므로, 3·1운동은 실패에 돌아가고 말았으나 조선해방운동에 있어서의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실로 위대한 것이다.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일본제국주의의 타협은 조선의 토착지주와 민족자본가의 일부를 회유하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니, 계급운동의 대두에 전율을 느낀 민족부르조아지는 조선해방운동의 지도적 역할을 구축하였을 뿐 아니라 그 혁명성까지도 점차 상실하여 갔던 것이며, 그 대부분은 특히 일본제국주의 침략전쟁 강행기간을 통하여서 완전히 일본제국주의 진영에 투항하고 말았다. 민족의 지도자로 자처하던 부류의 대부분은 지위와 재산을 확대 유지하기 위하여 내선일체론의 주창자로 전락하고 황민화운동의 급선봉으로 표변(豹變)하였던 것이다. 공산주의자, 좌익민족주의자를 중심으로 하는 근로대중의 반제반전운동은 집요한 혈투로 계속되었으나, 조선민족은 자력으로 일본제국주의를 붕괴시키기에는 너무도 그 단결이 미약하였던 것이니 이곳에 민족 천추의 유한이 남아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연합국의 획기적 숭전은 민주주의 세계를 재건하고 영구평화를 보장하려 한다. 조선에도 해방이 실현되고 자유독립이 약속되며 민주주의 발전이 조장되게 되었다.

  민주주의 국제평화노선 위에 오늘날 3천만 조선민족은 민주주의 신조선건설로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에서 우리는 3·1운동 기념의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함으로써만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더욱 위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3·1운동은 자유해방의 봉화이었으며, 민주주의 운동의 효시였나니 조선해방을 위하여 꾸준히 투쟁한 독립운동자를 위시하여 일본제국주의 폐허 위에 인민의 낙원을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민주주의 진영만이 민중과 함께 해방 후 처음으로 맞는 이 기쁜 날을 기념 할 수 있는 것이며, 3·1운동의 위대한 족적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친일파, 만족반역자를 토대로 하는 조선의 반민주주의 진영은 언제 어디서나 민족통일을 저해하여 분열을 촉진하고 있나니 거룩한 기념일을 자파 세력부식의 호기로 삼고 민족적 기념사업을 특권독재 수립의 도구로 역용하려 한다. 민족적 수치를 전 세계에 넓히고 오욕을 청사에 남기려 한다. 이것은 모름지기 단불용대의 죄악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요소의 광범 공고한 결집으로 반민주주의 반동진영을 타도하여 인민이 다같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고 자유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이날을 기념하는 우리에게 지워진 중대한 사명이며, 선열을 추도하여 그 위업을 계승하는 우리의 자부도 또한 이것에 있는 것이다.

  1946년 3월 1일


정인보, <광복 선열의 영령 앞에 삼천만 다함께 머리 숙이자>, 동아일보, 1946년 3월 1일
 

  우리 선열은 아시나닛가. 일구(日寇)가 일소된 우리 국토에서 처음으로 국경일의 전례(典禮)를 행하나이다. 황하☐ 물소리에 오열(嗚咽)함을 석그며 파자고국(巴子古國)의 산☐(山☐) 속에서 태극기 한(恨) 가득히 날리던 이 절일(節日)마다 일도영광(一道靈光)이 언제나 그곳을 위요(圍繞)하얏스러니. 선열의 쓰러지신 몸 그대로가 낫낫이 우리나라를 되이르키는 어귀찬 ☐주(☐柱)라. 지금에 잇서 더욱이 그 성향(聲響)을 듣는듯 하니 우리 엇지 스사로 자사념(自私念)을 둔다 하오리까.


  우리 선열은 아시나닛가. 우리 국토는 적이 물러가자 뒤이어 남북이 동강난지 달수로 여달달이오, 이 정당, 저 정당 분운(紛紜)하던 북새가 적이 지낫으나 아즉도 오른편이니 왼편이니 합니다. 종각(鐘閣)의 인경소리 뎅뎅하며 28년 전 이날에 전국민의 독립정신을 부루지지던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어 광파(廣播)시킴을 비롯하야 모☐과 행렬 곳곳마다 성대함을 보는 우리는 촉처(觸處)에 감격되는 바 무엇으로 형용할 수 업나이다. 선열의 끼치신 피줄기가 우리 자체(自體)에 순환되지 아니한다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순환이 정식(停息)되지 아니할진대 우리 엇지 그 지사(志事)의 계승에 자력(自力)치 아니하릿가.


  생각하건대 기미독립운동은 을사(乙巳) 이래 싸혀나려온 선열의 피의 격발됨이오, 오늘날 이 성전(盛典)은 기미 이래 싸혀나려온 선열의 피로 장식됨이니 우리 민족의 방래(方來)의 광명과 화복(華福)과 ☐☐의 어느 무엇이 선열의 열(烈)이 아닌 바 잇스리가. 순국(殉國)이라는 말을 지난 세월에 흔히 써왓으나 순(殉)은 종사(從死)의 의(義)라, 을사(乙巳), 경술(庚戌) 대변란과 생(生)을 한가지 아니하신 열적(烈蹟)으로부터 기미운동의 제(諸) 선열, 최근에 미치기까지 ‘위국사신(爲國捨身)’하신 여러분의 일을 종합하건대 모다 광복 일로(一路)로 분류(奮流)하는 상속(相續)적 대파(大波)이니, 엇지 순(殉)으로써 일커름에 그칠 바이릿가. 하물며 오늘에 잇서서릿가. 그러나 우리 선열을 추념(追念)함에 잇서 향을 피여 분욱(芬郁)을 상승(上升)케 하는 것으로 한다 하오릿가, 노래를 불러 음향이 사철(四徹)케 하는 것으로 한다 하오릿가. 종종(種種)의 의식, 종종의 행사, 이만 하면 이날의 유감이 업다 하오릿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야는 일절(一切)을 바리는 이 일단구(一段俱) 정신이 각개(各個)의 뇌리에 과연 엇더케 되어가지고 잇는가를 각개 스사로 도라보아 여기에 대하야 무됨이 업도록 여☐이 업도록 거듭나아가 이를 더 진발(振發)하도록 하는 노력이 곳 향이오 노래오 의식이오 행사인줄 아나이다. 우리 아모리 ☐생(☐生)하는 사념(私念)이 잇다 한들 선열 유혈(流血)의 과거를 생각할 때 국가, 민족 이외 어느 집착이 노화(爐火) 속 일모(一毛)가 되지 아니하릿가. 뜻 압헤 어려움이 업슴을 선열은 자신(自身)으로 보이섯나이다. 의(義)로 나가는 길에 가로막을 무엇이 업슴을 선열은 두렷하게 나타내섯나이다. 우리 선열의 과거를 추념함과 아울러 그 지사(志事)를 이어바더 나갈 것을 다함게 맹서하고자 하나이다.


1946년 3월 1일, 해방을 맞이하고 처음으로 개최하는 감격스런 3.1절 경축식은 좌익과 우익의 축제로 나뉘었다. 우익은 보신각과 서울운동장에서, 좌익은 파고다공원과 남산공원에서 각각 기념식을 거행했다. 좌우대립의 와중에도 이날만은 모두 함께 기념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결국 타협은 성사되지 못했다. 대체 어떤 얘기들을 했길래 그렇게 아웅다웅했던가? 좌와 우를 대변했던 글 두 편을 실어보았다.


출처 - 조선공산당의 글(김남식, 남로당자료, 돌베개, 1987, 한국현대사 데이터베이스), 정인보의 글(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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