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同時代史를 헤치며

한겨레나 경향, 오마이뉴스 등 진보 성향의 언론들이 연일 헌재의 미디어법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일리 있는 비판이고, 많은 시민들이 거기에 호응하고 있다. 누리꾼들이 창의력을 동원하여 갖가지 수사로 헌재의 판결이 보인 비논리를 비꼬아대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민주당이 처음에 동원한 수사인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가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오늘 본 "당선은 되었지만 대통령은 아니다"라는 수사도 꽤나 걸작으로 느껴진다.

헌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한편으로, 헌재에 애초부터 너무 큰 기대를 걸었다는 냉정한 분석도 가끔씩 보인다. 사실 나 역시 처음부터 헌재에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는 축이었다. 물론 마음 한편으로 기대를 하기는 했다. 만약 헌재가 어떤 형태로든 미디어법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 남은 기간 동안 미디어법은 꾸준히 살아움직이며 설사 다음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더이상 되돌릴 수 없는 형국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헌재가 나름대로 절차의 부당성을 지적했는데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정부여당의 행태를 보면, 한국 미디어의 미래는 정말 암울해 보인다. 미디어법이 정말로 통과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때문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나는 헌재가 결국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지는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최장집이 노무현 탄핵 판결이나 행정수도 위헌 판결을 사례로 들며 '제왕적 사법부'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나는 최장집의 이러한 견해에 동감하는 편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자 태생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사법부에 한국민주주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쥐어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제왕적 사법부' 개념의 요체이다. 미디어법 문제는 누구나 알듯이 한국민주주의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였다. 혹자는 헌재가 법리적인 판결을 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판결했다고 하여 비판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판결했다고 하여 마냥 비판만 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에도 우리는(혹은 민주당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헌재에 정치적 판단을 맡겼고, 헌재는 판단을 했다. 비록 정부여당이 그 판단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영 마뜩치 않긴 하지만, 우리가 헌재더러 왜 이럴 걸 예상하지 못하고 비논리적으로 절충해버렸냐고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지만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헌재가 정부에게 완전히 무릎을 꿇고 미디어법을 옹호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인지 비논리를 감수하고라도 절충을 하여 절차의 부당성이나마 꼼꼼하게 지적한 헌재가 할만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고 있다. 과연 이번 미디어법 판결에서 드러난 헌재의 행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헌재가 사법기관인 만큼, 판례를 근거로 하여 법리적인 측면에서 헌재의 과거와 현재를 평가할 수 있겠는데, 그 일은 내 소관이 아니다. 역사학도인 나는 역사적인 견지에서 헌재의 과거와 현재를 평가해야 하리라. 87년 민주화가 꽃피운 열매 중 하나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라는 사명을 띠고 1988년 설립된 헌법재판소가 어떠한 판결을 통해 한국사회와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지속해 왔고, 그런 가운데 한국민주주의 속에서 어떠한 역사적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세히 살펴볼 여력이 없어 아쉽다. 그저 인상비평 정도만 적을 수밖에 없겠다.

정치학의 논의 틀을 빌려와 생각해보면, 87년 민주화는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였고 그렇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주의는 고수하되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노력에는 소극적인 정치사회 구조를 형성했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몫은 여전히 비판의 끈을 놓지 않은 진보적 시민사회의 것이었다. 독재정권 시기의 보수독점 정당구조가 기본적으로 해체되지 않고 이어진 까닭이었다. 한편으로 사법부 차원에서 87년 체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조치로서 헌법재판소가 설치되었다. 독재정권 시기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태도로 국가가 국민을 억누른 시기였고, 사법부는 그 책임의 일부분을 지고 있었다. 헌재의 임무는 강대한 정부 앞에 선 나약한 국민 개개인을 가장 후방에서 지켜주는 일이었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의 붕괴를 가장 마지막에 저지할 책임을 맡은 기관이라 볼 수 있다.

헌재는 많은 진보적인 판결을 내려온 바 있다. 거칠게 구분하면 크게 두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하나는 상술한대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판결이고, 또 하나는 독재정권 시기 노정되어온 한국사회의 '비정상성'을 수정하는 판결이었다.(물론 두 기준 사이에는 많은 중첩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주로 정부의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정처분에 대한 구제 판결들을 들 수 있다. 헌재는 수많은 판결을 통해 헌법에 명시된 자유권적 기본권이나 청구권적 기본권의 범주를 확정하고 보호해왔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집시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들 수 있다. 그동안 헌재는 여러 차례 집시법의 독소조항들을 비판하면서도 한정 합헌 등의 판결을 통해 근본적인 수정을 가하지 않아왔는데, 그나마 이 정부의 독선을 가만 두지 않고 헌법불합치 판결(그나마 이마저도 절충을 가했지만)을 내린 것은 의의가 있는 대목이다.

후자의 경우에도 많은 사례를 들 수 있겠는데, 당장 떠오르는 사례는 호주제 위헌 판결이다. 호주제는 전근대적인 제도였고, 한국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극복해야 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사회적인 논쟁이 있었고, 반대세력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았다. 논쟁이 민감하게 전개되는 와중에서 헌재는 용단을 내렸다. 약간만 과장하면 '국민의식을 배반하는' 진보적인 판결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 한국사회가 과거의 질곡을 벗고 '정상사회'가 되는데 헌재가 기여한 바가 분명 적지 않았다.

거칠게 주장하자면, 헌재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이다. 최장집이 제기한 '제왕적 사법부'의 문제의식 안에서 사고한다면 헌재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한국사회의 정상화를 이끄는 그 이상으로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옳지 않기도 하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끄는 힘은 시민사회의 원동력과 정당정치의 민주화이기 때문이다. 엘리트주의는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진전시키지 못한다.

최장집의 논의를 끌어들이면 흔히 지나치게 원론적인 논지라고 비판받곤 하는데, 암튼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탄핵 판결이나 행정수도 판결, 그리고 미디어법 판결 등은 모두 헌재에게 지나치게 기댄 사안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극히 민감한 민주주의 갈등의 문제들은 헌재가 모두 감당하기 힘들다. 비용 대 효율로 따져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법적 판단으로만 민주적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결국 그 갈등은 미봉될 뿐이다. 행정수도 문제나 군가산점 문제가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초미의 갈등 사안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되는 바가 있다. 아마도 미디어법 문제 역시 앞으로 그러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 정부의 힘이 강한데다가 그 힘을 견제할 사회적 통로가 넓지 못하고, 이명박 정부 들어 좁은 통로는 오히려 더더욱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사회든 야당이든 비용 대 효과가 뛰어난 사법적 판단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극히 원론적인 시각일 테지만,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선출된 권력'을 만들고 견제하는 정치참여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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