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억하며 同時代史를 헤치며


(아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투쟁 투쟁 투쟁 투쟁 투쟁!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1. <임을 위한 행진곡>을 떠올려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린 노래로서, 대개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져간 수많은 이들을 다함께 추모하는 의미로써 불리는 민중가요이다. 백기완의 시를 가사로 하여 광주지역 문화운동가인 김종률이 작곡한 노래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서 끝까지 도청을 사수한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에서 영혼 결혼을 하는 두 이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처음 발표되었다. 그후 민중운동/시민운동/학생운동 차원에서 어떤 행사나 집회를 할 때마다 여는 노래로서 불러왔다. (위키피디아 참조)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가요이지만, 90년대 이후에는 해외에서도 많이 불리는 민중가요이다. 특히 방글라데시, 태국, 버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민중이 한국 민중가요를 수입하여 자기네 식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70~80년대 초반 태동한 민중가요는 크게 나누어 찬송가풍과 러시아민요풍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 노래는 처연하면서도 장중한 분위기를 지닌 러시아민요/행진곡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 민중문화가 러시아민요를 '번역'한 이 노래를 동남아시아에서 다시 '번역'하여 불렀으니 요즘 일각에서 흔히 말하는 '삼중번역'된 민중가요이기도 한 셈이다.

한국사회에서 민중운동이 위축되고 민중문화가 침체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역시 예전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낮아졌다. 내가 대학을 다닌 2000년대 초반의 분위기가 이미 그러했다. 그나마 내가 속한 과/반의 경우에는 민중문화가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어서 나는 이 노래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새내기 시절 어떤 과/반 학생회 행사에 참여했을 때, 서로들 정신 없이 막 웃고 떠들다가도 행사 시작과 동시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엄숙해지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위화감이 새삼 기억난다. 선배가 되어 이 노래를 부를 경우에도 후배들의 익숙치 않은 팔뚝질과 더듬거리는 입모양을 보며 역시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전경이 교정에 상주하고 사복형사들이 이야기를 엿들으며 배회하는 탓에 마음 놓고 웃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 노래가 대학사회의 분위기에 딱 들어맞았지만, 대학문화가 좀 더 발랄해지고 경박해진 오늘날에는 분명 잘 맞지 않는 노래이다. 다만 상징이란 게 대개 그러하듯이, 이 노래 역시 '그때의 기억'을 잠시나마 일부러 되새기기 위한 노래이고 그래서 굳이 국민의례의 애국가 대신 불리는 노래이다. 윤하가 야구장에서 멋들어지게 애국가를 부른다고 분위기 자체가 바뀌지는 않듯이, 임을 위한 행진곡 역시 그러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어색함을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속했던 반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거의 잊힌 노래이다. 올해 1학기 초 학생회 행사 중 하나인 '교양학교'(새내기를 위한 교양 세미나 기획이다)를 마무리하는 '졸업식'에 놀러갔었는데, 칠판에 적힌 식전 의례에 무려 '애국가 제창'이 있었다. 내가 전역 후 복학하여 느낀 대학사회의 여러 상전벽해들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던 사례였다. 모르면 차라리 부르지나 말 일이지, 하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애국가란 말인가. 나는 친한 후배 한 명에게 간곡히 부탁하여(아마도 그이에게는 압박으로 다가갔겠지만) 애국가 제창을 취소시켰다. 그렇다고 새삼스레 아무도 모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는 없는 일이고, 아예 식전의례 자체를 생략해버린 바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고학번의 '꼬장'이 없는 이상 앞으로는 학생회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일이 많아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아쉽고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2.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기억들의 엇갈림

개그하는 정부, 국민의례로 애국심 기르려 하나(오마이뉴스)

정부가 공무원노조를 압박하는 여러 꼬장 중 하나로 민중의례를 선택하여 공세를 가했다. 신지호 의원의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행위는 대한민국 공무원이기를 포기한 것"이라는 비난이 이러한 공세가 가진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나름대로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색깔론 공격이다.

나는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이러한 색깔론 논리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색깔론이 대놓고 횡행할 만한 사회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이 사태를 바라보면서 조금 딴 생각을 해본다. 많은 이들은 비록 색깔론 논리로써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반드시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민중의례 자체를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상술했듯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민중의례가 거의 잊혀 온 상황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것이고 민중의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정부의 민중의례를 소재로 한 꼬장은 분명 삽질이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 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이미지는 이 사태를 통해 사람들 앞에 다시 불려나왔다. 그 이미지는 과연 어떠한가?

모르긴 몰라도, 다시금 불려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과 민중의례의 이미지는 분명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저항의 기억, 민주화의 기억과 맞닿아 있을 터이다. 위 기사의 필자는 <국기에 대한 맹세> 이야기까지 끌어오며 민중의례는 경직된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민중의 자주적인 애국심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지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80년대에는 이러한 주장이 그 시절 표현으로 '즉자적'으로 설득력을 얻었을 것이고, 그래서 보편적인 문화로 정착했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하고 공감해야 한다. 그때 그 시절의 많은 경험들을 말이다. 기억과 공감이 부족하다면 민중의례 또한 많은 이들에게 국민의례 만큼이나 어색하고 억압적으로 다가가기 마련이 아닐까.

만약 정부의 이러한 공세가 기본적으로는 색깔론 삽질로 여겨지더라도, 한편으로 민중의례 또한 뭔가 어색하고 철지난 것이라는 이미지가 유포된다면, 그것으로 이미 이 논란은 극우세력의 승리가 될 터이다. 기억과 공감이 시도되기도 전에 이미지와 선입견은 널리 유포된다. 소위 '운동권'의 딱딱하고 진지하기만한 어투와 비타협적이고 교조적인 주장(이 또한 이미지와 선입견의 문제가 있지만)은 양념이 되어 그 유포에 일조할 것이다.

3. 불편한 기억을 불편하지 않게 추억하기 위하여

기억은 이성적 판단의 영역이면서 감성적 공감의 영역이기도 하다. 어떤 '불편한' 史實을 발굴하고 배우는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그 '불편함'을 기꺼이 참는 공감에서 우러나온다. 민중의례, 사실 너무나 불편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실 불량하기 그지 없는 노래이다. 위 기사의 필자는 이 노래가 일반적인 민주화 열망을 표현하고 있는 건전한 노래라고 변명하지만, 그렇지 않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는 노래라는 점부터 그러하다. 국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총칼을 겨누고 다가오고 있는데 무슨 알량한 애국심 타령인가. 광주 시민들은 무기를 쥐고 항쟁의 깃발을 올렸고, 처참하게 살육당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가라는 거대한 존재가 가장 나쁜 태도로 자신 앞에 다가섰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노래했다. 이 노래는 한국사상 최악의 기억 중 하나인 사건을 굳이 일부러 잊지 않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굳이 미화할 필요도 없고, 몇 가지 수사만으로는 미화하기도 힘든 노래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무시무시한 가사로 점철된 라 마르세예즈를 자신들의 역사 속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 노래로 여겨 수백 년간 불러왔듯이, 우리들 역시 이 불편한 노래를 굳이 잊지 않기 위해 불러온 것이다.

나는 엄숙하기 짝이 없는 민중의례와 불편하기 그지 없는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의 민중가요를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광장'이 출현하는 시점에 발맞추어 YB가 구슬프기 짝이 없는 아리랑이라는 전통 민요를 새롭게 '번역'하여 대단한 인기를 끌었었다. 새로운 '아리랑'의 인기는 한국사회에서 레드 컴플렉스를 넘어 비로소 광장 문화를 체험하기 시작하는 시민들의 '여유'를 반영하는 현상이었다. 만약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이 그만한 여유를 허락받을 수 있다면 70~80년대 민중문화를 새롭게 '번역'하기 위해 나설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여유는 전혀 없다. 김제동 쫓겨나는 걸 보면 더 할 말조차 없다.

민중의례를 소재로 하여 공무원노조를 탄압하고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한 인상을 조금이라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다면, 2007년 개봉했던 영화 <화려한 휴가>나 다시 한 번 보자고 권하고 싶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두 주인공의 '가상결혼식' 사진을 배경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장중하게 울려퍼진다. 바로 이 노래의 등장 배경을 모티프로 삼은 장면이다. 감독은 실제로 윤상원을 모델로 하여 남주인공을 설정했다가 너무 영화가 무거워질 것을 염려하여 '평범한 서민'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만은 이 노래를 틀기 위해 설정을 바꾸지 않았다.

가상의 사진 속에서, 현실에서 죽어간 이들은 모두 밝게 웃고 있지만 살아남은 단 한 명인 여주인공은 무표정할 뿐이다. 그 표정들 사이의 괴리를 보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불편함'을 되새겨보면 좋지 않을까. 그러한 공감이, 불편했던 기억을 불편하지 않게 추억해내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선덕여왕은 올 겨울방학 때나 좀 볼 수 있을런지...(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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