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에 부쳐 - 오영재 시인을 기억하다 同時代史를 헤치며



북한의 '햇볕정책' 덕에 오랜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실질적으로는 17차 이산가족 상봉(화상 상봉은 7차례). 그러나 이번 상봉에서는 공식적으로 차수를 붙이지 않았다. 전문가들 분석으로는 6.15공동선언의 위상을 격하시키려 하는 정부의 인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차근 차근 제도화 되어가고 있던 적십자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사업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졸지에 '일회성 행사'로 전락했다. 지난 두 정부는 16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과연 또 할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하다.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 편의 시를 떠올려왔다. 혹시 오영재 시인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2000년 6.15공동선언이 합의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산가족 상봉 때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남한에 살아계신 어머니의 소식을 접하고 절절한 사모곡을 지어 발표했었지만, 끝내 생전에 만나지 못한 채 어머니의 영전 앞에 자신이 지은 사모곡들의 육필원고를 바치며 오열했던 오영재 시인.

1990년 재미 문인 김영희 씨는 북한 방문 중 이북의 문인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한겨레에 기고했다. 이 기고문에 오영재 시인의 사연이 실렸다. 오 시인의 동생 형재 씨는 그 사연을 읽고 형님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오형재 씨는 김영희 씨를 통해 오 시인에게 편지와 가족사진을 전달했다.

 어머니(곽앵순 씨)의 생존을 확인한 오 시인은 이듬해 5월 <아, 나의 어머니 -  40년만에 남녘에 계시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라는 제목의 연작시를 미주 지역의 문예지 <통일예술>에 발표한다.    

그러나 어머니 곽 씨는 1995년 세상을 떠났다. 위의 사연을 계기로 첫 상봉단에 포함된 오영재 시인은 가족들이 들고 나온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는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이남의 많은 국민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2000년은 내가 고3이었던 때이다. 문학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이 시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이 시를 읽는 순간 가슴이 콱 막혀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하셨다. 측량할 수 없는 그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서였을까. 나 역시 그 선생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고, 첫 이산가족 상봉 방송을 보면서 눈물을 쏟으시던 내 어머니의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따라 울었던 나 자신의 모습 역시 잊혀지지 않는다.

천 만 이산가족이 짊어져온 상처 입은 삶의 무게는, 우리가 앞으로 몇 방울의 눈물을 더 흘려야 온전히 덜어낼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이산가족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일만 따져도, 지난 두 정부가 남북화해를 위해 썼던 매년 1인당 5천원 꼴의 비용은 너무나도 값싼 것이라는 점이다.

오영재 시인의 연작시 中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

검은머리 한 오리 없이
내 백발이 된다 해도 
어린 날의 그 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어
통일 향해 가는 길에
가시밭에 피 흘려도
내 걸음 멈추지 않으리니

어머니여 
더 늙지 마시라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내 어머니를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오마니!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오영재 시인 관련 참고 기사 - 최재봉, <오영재 시인 육필원고 공개>, 한겨레, 2000-8-17일 5면, 언론재단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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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하은s 2009/09/27 01:45 # 답글

    전 오영재 시인 하니 분렬의 장벽은 무너지리란 시가 생각이 나네요..
    하루 빨리 통일이 되었음..



  • 자유로픈 2009/09/27 23:02 #

    다른 시도 아시는군요. 저는 당시 회자되었던 본문의 시밖에 모른답니다...;;
    저도 하루 빨리 통일이 되길 바라요. 중요한 건 누구라도 되돌릴 수 없는 평화통일 프로세스가 제도화되는 것이겠죠. 통일 자체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실질적인 평화체제의 구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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