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黨 얕은 단상들

두통을 못 견뎌 어떻게든 잠을 청하고자 밑에 잡담까지 써봤지만 별무소용이다. 그냥 손 가는대로 글이나 더 써볼까.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지금까지 어떤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본인의 정치적 지향은 스스로 정의하기 참 어렵지만, 어쨌든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넓은 의미에서 진보적이고, 정당에 가입한다면 그 대상은 진보정당이 될 것이다.

어릴 적에 어떤 선배가 "나중에 회사에 취직한다면 노조 활동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길로 나간다면 정당 활동을 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었는데, 나 역시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렇게 해야겠다고 막연하게나마 여겼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전에는 정당에 가입하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했었다. 돌이켜 보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어쨌든 줄곧 그런 생각을 가져왔었다.

군복무를 마친 이후에는 고시 공부를 하느라 정당에 대한 고민은 유보했었다. 어차피 공무원이 되면 정당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고시를 포기하고 학자의 길을 걷기로 했으니, 정당 가입 역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학술 연구자로 살면서 어쩌다 보면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정당에 가입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단속적인 일들로나마 돈을 벌어가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내 돈으로 당비 내고 정당에 가입할 수 있다. 여전히 대상은 진보정당이다. 친노신당 어쩌구 하는 개혁적 정당이 출범했지만, 앞날도 불안하거니와 지향도 확실치 않다. 아직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진보정당 중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관심의 대상이다. 만약 두 정당이 분당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가입했겠지만, 기왕 분당이 되었으니 둘 중에서 선택해야 할 처지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 선택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새삼스레 두 정당의 홈페이지에 들러 강령과 정책들을 읽어보지만, 두통 때문에 잘 읽히지 않을 뿐더러 읽어봐야 큰 효용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문제는 두 정당을 현실적으로 운영하는 주체들의 성격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민족의 문제와 분단극복-평화통일의 문제를 중요시하지만, 민노당의 소위 '자주파'가 보이는 경직성과 편협성을 편들어줄 생각은 없다. 나는 비록 외부자이기 때문에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진 못하지만, 수 년 간의 갈등을 견디지 못해 결국 분당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고 만 이들의 처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 신뢰가 가는 강기갑 의원이 대표가 되고, 이정희 의원이 헌신을 보여주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내부에서 민노당이 어떤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진보신당 역시 외부자의 입장이라 그 실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듣기로는 촛불을 거치며 민노당 이탈 당원보다 소위 '촛불 당원'들이 더욱 많아졌다고 들었다. 이들은 사회주의 지향에 전반적으로 비판적이며, 아울러 친노무현 성향이라고 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진보신당 내에서 우파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들이라 할 것인데, 진보신당 입장에서는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 것인지 고민 중이라고 들었다.

작년 촛불 정국 때 진보신당은 당내 최대 의견 그룹인 '전진'의 총노선 제출로 인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나는 '전진'의 지극히 '운동권스러운' 총노선 문건을 살펴보면서, 도그마에 빠진 민노당을 뛰쳐나온 이들 중에도 여전히 '또 다른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씁쓸했다. 물론 전진 측을 옹호하는 이들의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계급은 중요한 문제이다"라는 주장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역시 그놈의 '소통'인 것이다. 작년의 총노선 논쟁은 진보신당 역시 '소통 부재'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라는 점을 증명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원론적인 측면에서 나는 두 진보정당이 통합하길 원하지만, 그것이 두 정당의 당원들에게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거니와, 통합을 요구하고 마냥 기다리는 일이 능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적절한 시기가 도래하고 나의 견해가 결정된다면 나는 어느 정당에 가입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어떤 정당에 가입하든 나는 연대와 통합을 추구하리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의 제도정치 지형에서 미루어볼 때 진보정당들이 서로 높은 수준에서 연대하고 통합을 추구해야한다는 나의 생각은, 솔직히 합리적인 정세 전망이라기보다는 어떤 '믿음'에 가깝다. 지난 재보선에서 울산 시민들이 무조건적인 후보단일화를 요구했던 사례처럼 말이다. 나는 그 울산 시민들의 요구 역시 합리적인 정세 판단이라기보다는 '약자는 일단 무조건 단결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블로거는 이글루스 블로거들의 전반적인 정치적 지향이 리버럴에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글루스에서는 두 진보정당 모두에 대한 비난과 냉소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내가 정당 가입의 의지를 조금씩이나마 굳혀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모습에 대한 경계 때문이었다. 밖에서 볼 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진보와 민주주의의 터전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거대한 적'의 전횡보다 조금 덜 위험할 뿐, 그 '거대한 적'을 암묵적으로 추종하는 태도와 동일한 정도의 위험을 내포한 태도이다. 본인이 충분히 경계하지 않는다면, 비난과 냉소의 태도는 어느새 '쿨한 합리주의'로 자기합리화되며 내면화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겁났고, 그래서 차차 정당 가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났건만 한국정치는 여전히 개인들로 하여금 예측 가능한 전망을 활용하여 적당한 시기에 참여할 수 있게 할 만큼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 당장 다음 선거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고, 심지어 오늘 벌어진 일이 내일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조차 예측하기 힘들다. 나는 여전히 모색하고 있지만, 나중에 너무 늦었다는 후회를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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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9/26 22:5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자유로픈 2009/09/27 00:32 #

    예 기억납니다...그 댓글 보았을 때에도 맘 속으로 고민 중이었죠...님이나 저나 너무 늦었다고 후회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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