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개새끼론'을 접하고-세대 갈등의 전후 사정들을 생각해보다 同時代史를 헤치며

0. '20대 개새끼론'?

어찌 보면 나는 '20대 개새끼론'에 대해서 유난히 할 말 많아야 할 축에 속하는 부류 중 한 명일지 모르겠다. 지난 대학생활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싸잡아 비난 받는 상황'에 대해 누구 못지 않게 불만을 가질 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가끔씩 이글루스에 들어올 때마다 이 주제를 다룬 글을 만나면 꼭 클릭을 해서 살펴보곤 해왔다. 어차피 봤자 날것의 분노만을 접하고 기분이 언짢아질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견해를 정리하는 글을 직접 쓰지는 못했다.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배경지식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조차 읽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글을 써봤자 정제되지 않은 말들만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생각은 복잡하고, 따라서 이 글 역시 산만하고 정제되지 않은 말들만 넘칠 가능성이 높다. 결론을 생각치 않고 서론부터 쓰기 시작하는 경험은 참 오랜만이다...

김용민 교수의 강경한 주장도 그랬지만, 얼마전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최영찬 교수의 탄식에 찬 인터뷰 기사도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내가 속한 학교의 분위기를 소재로 관련 주제를 다룬 글이었기 때문이다.

"부패에 관대한 학생들...대학은 죽었다"(오마이뉴스, 최영찬 교수 인터뷰 기사)
분노 못 느끼는 20대, "보수화'보다 무섭다(오마이뉴스, 김용민 교수 기고문)


두 지식인의 비판에서 공통적으로 논의되는 키워드는 '탈분노화'이다. 정치적 논의와 선택의 영역인 진보와 보수의 문제를 떠나 정치에 참여할 의욕과 열정의 배경이 되는 '정치적 분노'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들이다. '정치적 분노'가 부재하는 현상으로서 김용민 교수는 대학생들의 사회연대 노력이 사그라든 현실을 지적하고 있고, 최영찬 교수는 투표 불참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최영찬 교수가 투표 참여라는 기본적인 실천부터 시작하는 것이 급선무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면, 김용민 교수는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노의 조직화'라는 궁극적인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1. 세대론과 계급론

블로고스피어에서 '20대 개새끼론'을 접하면서, 솔직히 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세대 논쟁'이라는 게 전개되고 있는 현상부터가 무척이나 신기했다. '세대론'이라는 것은 내가 알기로 소위 '운동권'이 운위하는 이론이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표현일지 모르나 대학사회의 '운동권'에서는 스스로를 '청년학생'이라 부르며 자부하곤 해왔다. '세대론'은 대학사회의 '운동권'이 '청년학생'이란 주체를 설정하고 그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운위되어 온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생은 소위 계급론의 관점에서 진보적 주체로 인정하는 '노동자' 내지는 '민중'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대학생은 '인텔리' 계급이고, 어디까지나 민중과 함께 어깨 걸고, 혹은 그들을 선도하여 투쟁에 나서는 역할을 자임하는 집단이었다. 계급론 관점에서는 대학생들의 역할을 온전하게 정의하기 힘들다보니, 자연스레 '청년학생'으로 운위되는 세대론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내가 옛날에 본 '사회과학서적'들 중에 세대론과 관련한 몇 가지 구절들이 기억난다. 먼저 '청년'의 정의. '청년'이 지닌 가장 큰 특질로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새것에 민감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의롭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질로 미루어 봤을 때 청년학생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며 '구악'을 철폐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본성을 지녔다는 이야기이다. 이 주장을 구체적으로 구호로 만든 문장이 '시대는 세대를 규정하고, 세대는 시대를 창조한다'였다.(정확하지는 않다) 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암튼 당장 기억나는 건 이 정도인데, 부연할 점은 예전의 '사회과학서적'들에서 세대론은 결코 주요 뼈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노동자-민중'을 운위하는 계급론이 뼈대였고, 세대론은 보완적으로 덧붙인 '곁가지' 수준이었다.

어찌 보면 이제는 '옛날 얘기'로 치부되어도 좋을 '세대론'이 '20대 개새끼론'이라는 변형된 형태로 다시 출몰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이론을 처음에 만들고 퍼뜨린 이들 중에 '386세대'가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아님 말고!?) 나는 아는 바가 많지 않지만, 그것말고는 도대체 '운동권'의 '비밀스런' 논제가 사회 이슈가 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래서 '20대 개새끼론'의 근저에는 세대론에 익숙한 386세대의 감성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바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세대 논쟁이 신기하고 흥미롭다.

논리의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세대 논쟁이 가열되는 현상의 배경에는 계급 논의가 부재하다는 현상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한다. 현재의 세대 논쟁이 386세대의 감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렇게 볼 수 있다. 애초에 세대론은 계급론과 함께 운위되어 왔던 바이고, 동시에 계급론과 대등하게 서기보다는 그것을 보완하는 의미로서 운위되어 왔다. 청년학생은 어디까지나 '노동자-민중'이 변혁 주체로 '바로 서는' 것을 도와주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탈냉전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계급 논쟁은 급속하게 사그라들었다. 얼마 동안은 대학 사회 안에서나마 맑스주의와 계급 투쟁을 이야기하는 일이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어색해져 가고 있다. 지금의 대학 사회에서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순간 옆에서 같이 놀던 친구를 잃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어찌 보면 지금의 세대 논쟁은 계급 논쟁이 시들해진 자리에 곁가지로 붙어 있던 세대론이 마치 "나는 구시대적인 계급론과 상관 없다능!"이라고 주억거리며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80년대에 '운동권'과 학계에서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이 불붙었었다면, 2000년대의 블로고스피어 한쪽 구석에서는 '20대 개새끼론'이라는, 사구체 논쟁의 재판 아닌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박권일은 한 기고문에서 <88만원 세대>가 계급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이유는 그러면 책이 잘 안 팔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인정하면서, 떠올린 방책이 "불안정노동의 전면화라는 다분히 계급적인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糖衣)'를 입힌다는"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계급론은 인기를 잃었지만 세대론은 인류 사회의 유구한 논쟁거리로서 여전히 '떡밥'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그렇다. 세대 논쟁은 듣는 이의 뚜껑을 열게 만드는 뜨거운 '떡밥'이지만, 그 '떡밥'이 대어를 낚기 위해서는 세대론의 뒤편에 숨어 있는 계급문제를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학계 일각에서는 80년대 사구체 논쟁이 갑작스레 사그라든 현상을 안타까워 하는 분위기가 존재하고 있다. 비록 교조적으로 전개되었다든가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쉽게 그쳐서는 안 될 논쟁이었다는 평가이다. 지금 우리는 한국이 '누구'를 위한 국가가 되어야 하는지 자문하고 있다. '상위 1%'가 아닌 '하위 80%'를 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그러한 문제제기의 본질은 결국은 계급문제일 터이다. 조국 교수가 한 기고문에서 통렬하게 비판했듯이, 현재 이명박 정부는 마치 맑스주의 국가론의 테제를 입증하려는 것 마냥 활개를 치고 있는 형국이지 않은가.

2. 세대론의 본질과 지엽

사실 그리 적고 싶진 않았지만, '20대 개새끼론' 자체에 대한 내 생각도 간단하게 정리해보아야 하겠다. 김용민 교수는 '탈분노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연대를 통한 분노의 조직화'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분명 사회 부조리에 대한 20대의 분노는 만연하고 있고, 이점은 김용민 교수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조직되지 않은 분노'는 소용이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과연 그 '조직화'의 실체는 무엇일까. 상상의 가능성이 봉쇄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에서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제안은 '80년대 학생운동의 경험'을 되살리는 형태의 조직화이다.

그는 기고문에서 노무현 추모공연을 성사하기 위한 부산대 학생들의 투쟁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가 보기에 그것은 '과거 세대에게 그리 새롭지 않은' 사례이다. ① 먼저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선도하는 학생들이 있고, ② 그런 학생들을 차마 그냥 두지 못하는 심정(불인지심!!!)으로 다른 학생들이 연대하고, ③ 더 나아가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는 청년들을 미더워하며 많은 서민/민중들이 각성하고 나서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 기실 그렇다. 이런 장면은 70~80년대 민주화투쟁을 선도하며 승리의 경험을 맛보았던 386세대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장면일 것이다.

독재정권이 가장 신경을 써가며 탄압했던 사례들은 대부분 ①의 경우였다. 독재정권이 조작한 수많은 간첩단, 불온 조직 사건들은 선도투쟁을 벌이는 활동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연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시도들이었다. 그 시도들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했다. 많은 이들이 공안당국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고 때로 부당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한 실패에 절망하고 많은 대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가며 저항하기도 했다. 흔히 386세대의 대표적인 감성으로 '부채의식'을 거론하는데, 광주항쟁을 비롯한 이러한 희생들을 목도하며 키운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은 역사적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86세대는 이러한 부채의식을 소위 '선도적인 학생운동의 조직화'를 통해 항쟁을 전개함으로써 어느 정도 극복해낼 수 있었다. 386세대는 이러한 부채의식을 기반으로 민주화투쟁의 대중화에 나서 학생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연세대 학생 이한열의 죽음이 항쟁의 폭발을 가져왔듯이, 민주화의 저변에는 사회적으로 공유한 부채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주화의 경험은 386세대에게 범상치 않은 의미를 지녔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분노의 조직화'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이다. 내가 보기에 '20대 개새끼론'은 그저 나약한 20대들을 갖고 놀려는 악의로써만 도발하는 주장은 아니다. 설사 악의가 엿보이는 유치한 글이 있다 하더라도 지배적인 감성은 분명히 아니리라 생각한다.

요즘 '소통'이 화두인데, 세대 논쟁에서야말로 '합리적인 소통'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세대 갈등은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기록되었다는 인류 사회 만고 불변의 사회적 진통이다. 세대 갈등은 항상 있어왔지만, 그 갈등을 주조한 구조적 문제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달랐다. 앞서 말한대로 나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20대 개새끼론' 갈등의 뒤편에는 계급문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려 소모적인 갈등에 빠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떤 블로거는 소위 '변절'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386세대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기실 그 386세대를 구성했던 인간군상들은 한마디로 재단할 수 없이 복잡하다. 우리들 20대가 그렇듯이 말이다. 심재철과 같은 인격수양도 덜 되었으면서 말만 앞섰던 부류가 있었는가 하면, 노무현을 설복시킬 정도로 순수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던 이들도 있었다. 한홍구 교수가 어디선가 회고한 바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껏 변절하지 않고 묵묵히 진보를 응원하는 386세대들은 대부분 ①보다는 ②에 속했던 부류의 사람들이라 한다. 이론은 잘 몰라도 여하튼 친구가 두들겨 맞고 끌려가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섰던 순진했던 이들이었다.

이들 역시 생각들은 다양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들이 '20대 개새끼론'을 접하면서 대개는 증오라기보다는 안타까움을 표시할 것이라고 믿는다. 기실 '20대 개새끼론'의 기저에 현실에 대한 속터지는 안타까움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 뭔가 해줬으면 바라고 있고,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역시 젊은이들이 좀 나서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성은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비판한대로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곧 젊은 세대의 책임 회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어찌 됐건 역사의 수레바퀴는 전진해야 하고, 그 역할의 많은 몫은 젊은 세대가 떠안아야 한다. 오히려 '20대 개새끼론'은 여전히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반증이다. 서로 간에 국면을 넓게 보고 본질을 직시한다면 세대론 너머에 있는 진정한 모두의 골칫거리가 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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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uot;20대 개새끼론?&quot;, 그런 20대를 만든게 누구인가? 2009/09/27 12:42 #

    "20대 개새끼론"이 드디어 오프라인 신문상에서도 공개가 되었다. 주간조선 2074호에 게재된, 기사 내용을 보면, 해당 사태의 도화선이 된, 김용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라고 일방적으로 재단해버린 생각이 나온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나 단순명쾌하다. 작금의 사태에 대해, "20대, 너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런 생각인 거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그런 386세대들이 ...... more

덧글

  • 우왕굿 2009/08/03 22:02 # 삭제 답글

    저기요, 김용민글 처음 나왔을때 사람들이 '사실 20대한테 희망을 걸고 계신거죠? 자극받으라고 쓰신 글이죠?'라고 물어봤어요. 근데 김용민이 후속글에서

    '그런 의미 아니구요. 진짜로 포기한거에요'라고 말했답니다
  • 자유로픈 2009/08/03 22:10 #

    글쎄요. 제가 링크한 기고문은 조금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한데요. 진짜로 포기했으면 그런 글을 발표하지도 않았겠죠. 혹시 진짜 그렇다면 제 본문에서 언급한 '악의'가 있다는 것일 텐데, 저는 그런 '악의'가 결코 지배적인 감성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 연석 2009/08/03 22:17 # 답글

    동감합니다. 세대론 이전의 진짜 문제에대해서 이야기 할 때입니다.
    지겨워 죽겠어요. 이건 뭐 사냥에 실패한 뒤 서로 책임전가하는 부족민들도 아니고.
  • leopord 2009/08/03 23:05 # 답글

    김용민 교수가 스스로 '20대 무망론' 이라고 부르는 20대 개새끼론 자체는 좋은 문제제기가 아니었죠. 적절하지도 않았다고 봐요. 마냥 포기라느니 적대라느니 왜 너희들은 아무 것도 하지(혹은 해주지) 않느냐는 불만만 키워서는 세대와 세대 간의 소통은 이뤄지지 않겠죠. 하다 못해 같은 세대라도 제대로 소통하기 얼마나 어려운가요.
  • 자유로픈 2009/08/03 23:16 #

    저도 김용민 교수의 충남대신문에 실렸던 첫 글을 읽고는 충격을 좀 받았었죠. 공개적인 지면에 이런 도발적인 글을 쓰다니 하면서 말입니다.
  • 2009/08/03 23:0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자유로픈 2009/08/04 00:13 #

    첫번째 지적하신 부분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93학번 출신이고 대학생 때는 보수적이었다고 자인하더군요. 서론에서 김용민 교수 글을 인용하다보니 그것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는 것 같네요. 저는 그 이전부터 있었던(개인적으론 촛불 때 처음 접했던) 논의를 생각하면서 글을 썼기 때문에 386세대를 논의의 중심에 두고 계급론과의 관계를 언급해보았습니다. 그의 기고문들 중에 "현재 20대는 지금의 386이 아니라 386의 20대와 비교해야 한다"운운하는 구절이 있는데, 그걸 보면 386세대의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서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아요.

    80년대 노선 투쟁을 언급한 부분은, 사실 아는 게 별로 없는지라 좀 위험을 감수하고 쓴 측면이 있습니다. 대강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노선 간의 세세한 차이는 잘 모릅니다. 무림학림논쟁부터 시작하는 얘기들이 후인이 듣기에는 조금 복잡하지요. 80년대 초 지하써클을 벗어나 대중적인 학생회 건설로 나아간 것이 그 '선도투 이론'의 종식 때문이었던가요? 암튼 80년대 학생운동 노선이 대중화를 꾀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긴 합니다. 다만 명확한 '노선'보다는 일반적인 '감성'이 여전히 선도투쟁 혹은 '계몽'에 치우쳐 있었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200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습니다만, '희생'을 상징하는 '열사정신'을 숭배하는 기풍이 여전했습니다. 80년대에도 그러하지 않았을까요?

    한편 돌이켜보니 본문에서 투쟁의 순서를 나눠본 해당부분은 80년대 노선투쟁의 흐름보다는 70년대 반유신투쟁부터 80년대 민주화투쟁에 이르는 '역사적 경험'을 드러내고자 했던 부분인데, 바로 뒷 문단의 내용과 뒤섞여 주장이 모호해진 측면이 있군요...그렇게 이해해주시면 안될런지요;;;
    사실 이 주제를 접하면서 궁금했던 점은 과연 현재 20대를 까는 386세대의 문화나 감성이 어떠하고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관한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글을 썼으니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 滿月 2009/08/03 23:26 # 답글

    확실히 영원한 떡밥이긴 합니다. 전 그 이십대 개새끼론이란 말만 들어도 발끈하곤 해서 말이죠. 지금의 20대 담론을 보면서 좀 짜증나는 건 기성세대가 "자신들이 이십대일때 이랬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라는 우월감, 혹은 질타를 가장한 조롱 때문입니다.
    세상을 변화 시키는 건 나이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이니 그 젊은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있으니 짜증이 나는 건 당연하죠. 그리고 자유로픈님이 말씀하신대로 빙산의 일각만 건드리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이십대를 욕하고 그 욕을 먹은 이십대는 다시 기성세대를 비난하고 말이죠.
    가장 큰 틀을 건드리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죠.
    그냥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이런 글이 보고 싶었습니다.
  • 자유로픈 2009/08/04 00:01 #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만월님 블로그 방문해 글 읽어보았습니다. 결국 과제는 무엇을 문제로 삼을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이냐일 테지요. 일단 제 본문에서는 계급문제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긴 했습니다만, 여러 논의들이 있겠지요. 어떻게 할 것이냐에 관해서는 일단 '조직화' 문제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과연 김용민 식의 '조직화'가 옳은 것인가, 혹은 가능한 것인가? 저는 일단 가능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고 봅니다. 그때랑 지금은 시대가 다르니까요. 지금 20대에게 맞는 '조직화'는 어떠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 oo 2009/08/04 00:57 # 삭제 답글

    조직화하는데 드는 자금하고 인력은 어디서 납니까? 맨땅에 헤딩하는거 아니면 기존 조직에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20대까는 386은 그런 조직하나 안만들고 뭐했습니까? 조직이 있는데 20대가 마음에 안든다고요? 그럼 그 조직이 지금시대에 안맞는 겁니다.

    여러성향의 기존조직에 젊은 피들이 충원되고 그 조직끼리 경쟁, 타협하는 사회가 정상일겁니다. 김용민 저사람이 20대의 취업노력을 매도하면서 횡적연대만 강조하는건 쓰고 버릴려는 의도로 밖에 안보입니다. 상하연결이 끊기고 횡적 연대만 되있는 사회가 잘도 돌아가겠습니다. 저 논리대로 조직화하면 20대가 사회를 바꿔도 자기 윗세대는 척결했고 자기 아래 세대는 조직에 참가시켜주지도 않을거니 그 아래세대도 자기들끼리 조직화해서 지금 20대를 척결할거니 세대간 피를 튀기겠군요.
  • 2009/08/04 01:0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나인테일 2009/08/04 02:45 # 답글

    자아. 이제 수능이 100일 남았습니다. 20대를 포기한 위대한 386들의 구세주인 '촛불세대'가 대학에 입성하실 것이니 이제 천지 개벽이 멀지 않았습니다. (...진짜로?)
  • 자유로픈 2009/08/06 01:06 #

    이제는 대학생들이 개강 초에 벌이는 춘투가 아니라 수험생들이 수능 끝나고 벌일 동투가 무서워지는 걸까요...!!!!
  • 나아가는자 2009/08/04 10:44 # 답글

    요즘 20대에 관한 논의들을 보며 머리아파하던 차에 이 글을 읽고나니, 좀 낫네요. 여튼 20대에 관한 논의를 큰 틀에서 정리해주는 그런 걸 찾고 싶었습니다.
  • 자유로픈 2009/08/06 01:06 #

    정제되지 않은 글을 읽고 정리를 할 수 있는 나아가는자님이 대단하시군요...^^;;
  • 아사랑 2009/08/04 11:04 # 삭제 답글

    나인테일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 안드시나요?

    이미 포기해버린 20대보다 진취적이 10대들이 이나라를 이끌어 갈것 같군요.
  • Dextros 2009/08/04 19:36 # 삭제

    10대가 진취적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
    뭘 보고?
  • 2009/08/05 11:3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자유로픈 2009/08/06 01:26 #

    으음 글쎄요...악법이란 주제로써 각 시대를 분절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이 어쩌면 용이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정희 시대 3,4공화국과 전두환 5공화국은 굳이 따지자면 법 영역에서는 분절성보다는 연속성이 더 두드러지지 않았나 여깁니다. 국가보안법만 해도, 일제시기 치안유지법부터 시작하여 이승만 정권 시기에 제정, 개정되고 박정희정권기에 반공법과 함께 맹위를 떨치다가 전두환 때 반공법을 흡수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는데, 각 시대별로 분절하여 살펴보는 일이 쉽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박정희 반공법이 전두환 때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국보법에 흡수되어 여전히 그 기능을 발휘하는 거였으니까요. 물론 정권마다 각각의 특성을 지닌 악법들을 제정했겠지만,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본다면 한국현대사에서의 악법 체제는 국보법 체제와 노동법 체제로 규정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보법은 주로 통일문제와 노동법은 전태일 사례로 상징되듯이 노동문제와 관련지어 대표적인 악법들로 지목되어 왔었지요.
    문헌 역시 제대로 아는 바는 없습니다. 국보법으로는 당장 떠오르는 게 박원순의 국가보안법 연구 정도? 제가 지금 서울에 있지 않은 상황이라 당장 조사해보기가 힘들군요. 혹시 늦지 않게 되면 서울에 올라간 후에 조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연할 점입니다만, 서중석 교수는 한국현대사에서 독재정권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억지로 제정하거나 개정한 법이 나중에는 오히려 한국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구조로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는 '역설'을 자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이승만이 재선을 위해 밀어붙인 직선제가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거나, 혹은 전두환 정권이 밀어붙였던 언론통폐합정책의 잔재가 현재에는 언론공공성을 담보(언론재단의 끼워팔기식 광고배분정책-아마 지금은 없어졌던가요)하는 기제가 되고 있는 상황 등을 예로 들 수 있지요. 들으면서 제가 흥미를 느꼈던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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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