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총사퇴 결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同時代史를 헤치며

1979년과 2009년. 날치기와 직권상정. 현대사의 반복과 전진.(본인 글 자체 트랙백)

위 글은 정세균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가 '총사퇴' 결의를 표명한 소식에 자극을 받아 쓴 바이다. 글을 쓴 후 며칠 지날 동안 여러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총사퇴'가 지닌 정치적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조선일보 '팔면봉'에 실린 민주당 의원 총사퇴에 관한 촌평을 보면 참 냉소적이기 그지 없는데, 글쓴이가 모르고 그랬는지 알고 그랬는지 사실관계를 교묘하게 왜곡시켜 놓았다.

조선일보 팔면봉관련 코멘트 - "제1야당, 의원직 총사퇴 선언. 과거 수없이 결의했지만 실행된 적 없는 바로 그 카드.

'수없이'라고까지 하기에는 남우세스럽지만, 암튼 총사퇴 '결의' 자체는 수 차례 있었다. 여기 저기 자료들을 둘러보니 1965년, 1979년, 1990년, 1998년, 2004년 등에 있었다. 1998년 한나라당 의원들이 총사퇴를 결의했던 경우 빼고는 모두 민주당 계통의 정당이 시도했던 사례들이다.

'실행된 적 없는'이란 기술은 명백히 틀렸다. 일단 실제로 사퇴한 사례가 있었다. 1965년 한일협정 파동 때 민중당 의원 61명이 사퇴서를 제출했다. 우여곡절 끝에 윤보선 등 8명의 의원에 대한 사퇴서가 수리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의원직 사퇴는 해당 의원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국회에서 표결로 처리되어야 하는 사안이다. 즉 사퇴서를 의장에게 제출하면, 표결을 통해 사퇴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팔면봉'에서는 흡사 야당이 '정치쇼'를 벌일 목적으로 총사퇴를 이용하고 있다는 식의 비난을 하고 있는데, 총사퇴가 쉽게 '실행'될 수 없었던 이유는 여당이 져야할 막중한 부담 때문이기도 했다. 참고로 현행 국회법 관련 조항을 인용해본다.


제135조(사직) ①국회는 그 의결로 의원의 사직을 허가할 수 있다. 다만, 폐회중에는 의장이 이를 허가할 수 있다.

②의원이 사직하고자 할 때에는 본인이 서명·날인한 사직서를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③사직의 허가여부는 토론을 하지 아니하고 표결한다.


민주화 이후에 있었던 총사퇴 결의는 결과적으로 '정치쇼'로 끝났다. 1990년, 1998년, 2004년 모두 그랬다. 총사퇴 결의를 했던 야당 측에서 자진하여 결의를 철회함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민주화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의 총사퇴 결의는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고 정국에 큰 변동을 몰고 왔다.

현재 민주당이 던진 의원직 총사퇴 카드의 성격은 어느 경우에 가까울까. 현재 사퇴서를 의장에게 직접 제출한 의원은 정세균, 최문순, 천정배 의원 세 명이다. 나머지 의원들은 사퇴서 제출 여부를 정세균 대표에게 위임해 놓은 상태이다. 향후 정국의 흐름에 따라 정세균 대표가 나머지 의원들의 사퇴서를 직접 의장에게 제출할 수 있는 것이다.

1979년 김영삼 제명 파동 때의 경우,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과 소수야당이었던 통일당 의원 3명이 의장에게 직접 사퇴서를 제출했다. 형식적으로는 현재의 민주당보다 더욱 강경한 투쟁노선을 채택한 것이었다.

공화당-유정회 정책조정회의는 처음에는 일괄반려 방침을 정했다가, 며칠 후 돌연 선별처리 방침으로 선회했다. 선별처리 방침을 주장한 쪽은 강경파였다. 강경파 의원들은 신민당을 '체제순응적'으로 만들기 위해 신민당 강경파 의원들은 사퇴시켜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민심이 폭발했다. 부마항쟁은 여당권의 돌연한 입장 번복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일어났다. 정권은 폭압적인 방식으로 부마항쟁을 진압했지만, 결국 민심 이반을 고려하여 다시 일괄반려 방침을 채택하고 신민당에게 '자진철회'를 촉구하는 전술을 펼쳤다. 이 와중에 여당권 온건파들은 민심 이반의 책임을 물어 강경파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인책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당권의 방침이 오락가락하고 거리에서는 대중 시위가 전개되는 동안, 제도정치는 전면 중단되었다. 당시 기자는 '정치부재의 그늘'이란 표현을 썼다. 당시 신민당 의원들은 지금 민주당 의원들처럼 장외투쟁을 할 형편도 안 되었기 때문에 아예 대외활동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부마항쟁 때문에 부산경남 지역구 의원들은 진상조사단을 꾸려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을 뿐이었다.

부연할 점은, 여당권에서 사퇴서 자진철회를 촉구하자 신민당 내부에서 이철승이 이끌었던 비주류가 당권 부재를 틈타 당권 장악에 나서려 했다는 것이다. 이철승은 김영삼과 대결하며 '중도통합론'을 내세웠던 바 있었는데, 기실 유신체제에 대한 투쟁을 포기하는 정치노선이었다. 만약 박정희가 죽지 않고 이철승이 당권을 장악했다면 신민당은 총사퇴를 철회하고 국회에 등원했을 가능성이 컸다. 여당권에서 아무런 당근도 주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랬다면 야당의 침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여(與)에 간부비판론>, <신민당 내분 재연 조짐>, 동아일보 1979년 10월 25일자. 박정희가 죽기 바로 전날의 기사이다. 여당권 온건파가 인책론을 무기로 강경파를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과 신민당 비주류가 당권 부재를 틈타 당권 장악을 획책하고 있다는 소식이 같이 실려 있다.(출처-네이버 DNA)

현재 민주당이 선포한 총사퇴 결의는 민주화 이후에 있었던 몇 차례의 '해프닝'처럼 끝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국의 어수선함과 미디어법이라는 사안이 가진 정치적 파괴력을 감안하면, 민주화 이전에 있었던 사례 만큼이나 커다란 정국의 변동을 몰고올 가능성이 높다.

사퇴서를 직접 의장에게 제출하지 않고 일단 대표에게 위임했다는 측면에서 형식적으로는 불완전한 총사퇴 결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으로서는 나름대로 가장 강경한 카드를 내보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부여당이 기왕의 '먹통'을 고수하여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과연 여론이 민주당을 확실하게 밀어줄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지만, 정부여당은 가능한 지연작전을 쓰면서, 즉 사퇴서 수리(표결) 여부 결정을 최대한 미루면서 자진철회를 촉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지 않고 협조노선으로 나서 민주당 의원들을 등원시키려면 무언가 당근을 던져줘야 할 터인데, 지금으로선 정부여당이 미디어법이나 금융지주회사법과 관련해 어떤 양보를 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민주당 역시 정부여당이 스스로 입장을 바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퇴서 직접 제출이라는 초강경 방침은 채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초강경 방침을 채택했는데 정부여당은 요지부동이고 여론 역시 화끈하게 밀어주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트랙백한 본문에서도 강조했듯이,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여론의 향방이고,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실천이다. 민주당이 총사퇴 카드를 꺼낸 이상 해결방법은 단 하나로 좁혀졌다. 바로 정부여당의 '상당한' 양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보로 미루어 봤을 때 왠만한 저항 가지고는 정부여당의 변화를 이끌어내긴 난망하다고 보인다. 이미 여론이 불리함을 알고서도 밀어붙인 직권상정이었다. 이 정도의 반발 가지고는 어림 없다는 말이다.

혹시라도 민주당의 총사퇴 결의가 저 조선일보의 '팔면봉'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의 정치쇼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바꾸길 권한다. 한겨레가 쓴 기사 중에 꽤 설레발을 치는 것 같은 기사들이 있는데, 사실 설레발이라고만은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민주당은 더이상 정부여당의 폭주를 용인하다가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 자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 위기감을 결집시킨 전략이 바로 총사퇴 결의이다.

민주당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은 응당 옳은 일이나 냉소적인 자세를 가져선 안 될 일이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으로부터 적지 않은 양보를 얻었을 때만이 등원의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되지만, 그 양보는 민주당만의 힘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현실이다. 민주당은 왕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운명을 시민사회에 내맡겼다. 비록 민주당은 총사퇴 카드가 통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하여 어떤 변명을 가지고 정부여당이나 조중동과 화해할지 머리를 굴리고는 있겠지만, 최소한 그 순간이 가급적 오지 않길 바라며 열심히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고전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민주당은 시민사회에 공을 넘겼고, 시민사회는 대답을 해야 할 차례이다.




덧글

  • 한단인 2009/07/26 02:23 # 답글

    젊은 세대(특히 인터넷 세대) 미디어법에 대한 반감이 제법 높은 편이라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서는 정보를 접할 경로가 제한적인데다 한나라당에서 '민생법안'이라는 프레임을 짜둔 통에 그때와 같은 반향이 일어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뭔가,,반향을 일으키려면 미디어법안 자체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법 통과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물고늘어지는 프레임이나 미디어법이 민생법안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반박 프레임을 짜야할 거 같다는 느낌이네요.
  • 자유로픈 2009/07/26 03:03 #

    흠...뭐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기성세대 역시 미디어법 사태의 본질을 잘 알 것이라고 봅니다. 일단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은 기성세대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고, 지난 1년여 동안 꾸준히 홍보되어 왔습니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민주 정권이라는 인식이 본격적으로 확산된다면, 2004년 총선 시기의 정치지형이 복원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오히려 젊은 세대가 걱정입니다. 제 생각이 구시대적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레임 형성을 선도하는 역할, 시쳇말로 몸빵을 하는 역할은 여전히 젊은 세대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터넷공간에서 여론 형성을 이끌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역시 중요한 결전장은 오프라인의 길거리입니다. 과연 젊은 세대는 길거리에서 권력과 정면대결을 벌여낼 수 있을까요. 현재로선 전망이 밝지 않아 걱정입니다.
  • 명랑이 2009/07/26 03:45 # 답글

    정부여당이 전혀 양보하지 않는 가운데 법원이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다면 참으로 뻘쭘한 상황이 올 것 같습니다.
  • 자유로픈 2009/07/26 12:13 #

    본문에서 사법부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군요. 달리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사법부가 그런 모험을 할 가능성은 매우 적겠죠. 신영철을 쫓아낼 수 있었다면 일말의 희망이 있었겠지만, 그러지도 못한 마당에 사법부에게서 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 루치까 2009/07/26 04:15 # 답글

    일단은 헌재나 법원을 믿어보지만, 만약 소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 문제가 되겠죠. 제 생각은 한나라당이 아마 민생법안을 방패로 개헌 논의까지 진전시킬 것 같은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별로 상상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87년 이전의 극한대립이나 아니면 민주당이 타협을 해버리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산 넘어 산이군요. 난관입니다.
  • 자유로픈 2009/07/26 12:23 #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당분간 개헌 논의는 제기하기 어렵겠죠...중대성의 차원이 다른 문제이니까요. 87년의 경우에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극한대립을 벌였지 여야 제도권 정당들은 결국 타협을 해버렸었죠. 사실 그 정도의 타협만이라도 좋으니 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론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민주당이 결국 굴복하게 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욱 나락으로 빠지는 길만이 남는 것이겠죠...
  • 나아가는자 2009/07/27 02:42 # 답글

    오랜만에 왔습니다. 글 잘봤습니다. 의원직 총사퇴라는게 참 어려운 문제군요. 이제 공이 시민사회로 넘어왔다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해야 할 때 겠지요.
  • 자유로픈 2009/07/27 14:57 #

    프레시안 칼럼에서 손호철은 이걸로는 아주 부족하니까 의장에게 직접 사퇴서 제출하고 아예 방 빼고 나오라는, 즉 진정한 총사퇴를 실행하라고 주문하고 있군요. 정세균은 의원들의 총사퇴는 '신중하게'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구요...사실 저 역시 민주당의 현 방침이 손호철의 지적대로 어정쩡한 측면이 많다고는 보는데, 그래도 예전처럼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하여 본문을 쓴 것입니다. 민주당의 방침이 어떻든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진 건 변함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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