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과 2009년. 날치기와 직권상정. 현대사의 반복과 전진. 同時代史를 헤치며

방금 국회 본회의에서 미디어 관련 세 법안과 금융지주회사법이 직권상정되어 통과되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직권상정. 예전에는 주로 '날치기'라고 불렸다. 2003년인가 표결처리는 반드시 의장석에서만 하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본회의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여당 의원들끼리만 몰래 모여 법안을 통과시켜버리는 '날치기'는 없어졌다. 대신 '직권상정'이란 말이 등장한 것이다. 날치기에서 직권상정으로, 용어는 자못 세련되어졌지만 나타나는 현상은 전혀 바뀐 것이 없다.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문득 1979년 10월의 '김영삼 국회의원 제명'을 둘러싸고 파행을 겪었던 정국이 연상되었다. 얼마 전에 1978년 12.12총선에서 1979년 10.26사건으로 이어지는, 유신체제가 파국으로 치달았던 역사를 신문기사를 통해 바라본 포스팅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본인의 관련 포스팅) 그 포스팅을 쓰기 위해 훑어보았던 신문기사들에 관한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아마도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가 의원직 사퇴를 공언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김영삼 총재 제명 강행>, 동아일보 1979년 10월 4일 1면.(출처 - 네이버 DNA. 이하 기사들도 마찬가지)

<신민의원 총사퇴서>, 동아일보 1979년 10월 13일 1면.

이전 포스팅에서 썼듯이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은 너무나 비상식적인 처사였다. 이 일을 계기로 정권과 시민사회는 결코 서로를 용인할 수 없는 극단적인 갈등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민당은 주류(김영삼 측)와 비주류(이철승 측)를 막론하고 박정희 정권을 용인해서는 자신들의 정치생명은 물론이고 신체 생명조차 위협받게 될 것임을 직관적으로 자각했다. 언론은 통제되고 여론은 짓눌려 있었지만, 야당 의원들은 시민사회의 물밑에서 대세가 바뀌어가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눈치챘다. 신민당은 의원직 총사퇴서를 제출했다. 제도정치는 말그대로 실종되었다.

<마산, 창원에 위수령>, <정치 정적, 여야 거의 침묵>, 동아일보 1979년 10월 20일 1면

신민당 의원들은 총사퇴서를 제출하고 정치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기사 부제를 보면 '신민, 성명 뜸해지고 일부는 귀향'이라고 적혀 있다. 본문을 보면 김영삼 총재는 외국 기자들과 회견하는 등 연일 바쁘게 활동하고 있고 당 총재단 회의도 열리고 있지만, 기자가 보기에 "파국으로 치닫던 정가는 이제 깊게 드리워진 정치부재의 그늘 아래 '조용한 파국'의 모습을 띠고 그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공화당과 유정회 등 범여권 역시 '정치휴전'을 선언한 이래 야당을 다시 의회로 끌어들일 대책을 조용히 모색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공화당은 총사퇴서에 대해 '일괄처리', '선별처리', '일괄반려' 등의 입장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다.

제도정치가 '조용한 파국'에 처해있던 반면 거리의 민주정치는 다시금 폭발하고 있었다. 김영삼 제명으로 인해 부산 경남 지역의 민심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공화당이 신민당 의원들의 총사퇴서를 반려하지 않고 선별처리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끝내 민심이 폭발했다.

<부산에 비상계엄>, 동아일보 1979년 10월 18일 1면.

10월 15일 부산대 학생들이 '민주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부마항쟁'이 시작되었다. 10월 16일 대학생들이 부산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시민들이 대거 합세했다. 신문기사를 보면 대학생 외에 '폭력배', '일부 불순분자'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결합했다고 적혀있는데, 이들은 주로 실업자 청년과 지역 소상인들이었다. 경제위기와 인플레로 인해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사회적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유신정권의 정치탄압은 그런 불만들에 기름을 부었다. 시위의 신호탄을 쏜 주체는 대학생들이었으나, 시위를 항쟁의 성격을 띠도록 발전시킨 주체는 실업자, 지역 소상인 등의 빈곤한 서민층이었다. 부마항쟁 기간 가장 격렬하게 충돌이 벌어졌던 곳이 당시 부산에서 가장 큰 상권을 이루고 있었던 남포동, 광복동 지역이었다.

많은 순박한 시민들은 국회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갈등을 비판하며 곧잘 "서민 경제에는 하등 신경쓰지도 않고!!" 등의 발언을 빼놓지 않는다. 사실 그렇다. 한국 국회에서 의원들이 사생결단을 감수하면서 벌여왔던 수많은 '몸싸움'들은 거의 '서민 경제'와는 관련이 없는 지극히 '정치적인' 사안들이었다. 위에 언급한 1979년의 '김영삼 제명'도 그렇고, 민주화 이후의 대표적 날치기 사태였던 1996~7년의 '노동법 날치기 파동'도 그러했다. 21세기의 사례들도 덧붙이자면, 이를테면 2004년의 '노무현 탄핵 사태'나 뒤이은 '4대 개혁입법 갈등' 등도 지적할 수 있겠다.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미디어법 직권상정 사태' 역시 비슷하다. '서민 경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그래서 현재의 많은 소시민들이 주저 없이 "서민 경제에는 하등 신경쓰지도 않는다고" 여야를 싸잡아 비판할 수 있을만한 사안이다.

국회에서 이른바 '서민 경제'에 관련된 법안들이 아닌 지극히 '정치적인' 사안들이 날치기나 직권상정과 같은 극단적인 갈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는, 대개 그러한 사안들이 정치세력들의 정치생명을 결정할 수 있을만큼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사안들은 '서민 생활'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한국사회에서의 계급갈등을 첨예하게 반영하고 있다. 첨예하게 반영한다는 말은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사실 흔히 '서민 경제 생활'에 관련되었다고 여겨지는 법안들은 정치세력들 간에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마련이다. 기득권을 제한하는 정도, 서민을 위하는 정도의 차이는 얼마든지 협상과 타협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 그러나 지극히 '정치적인' 사안들은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거나 극히 적다. 1979년의 '김영삼 제명 사태'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오늘의 직권상정 사태는 김형오 국회의장이나 한나라당이 솔직하게 밝혔듯이, 조중동이 방송을 장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장악하면 하는 것이고 못하면 못하는 것이다. '얼마나' 장악하느냐 하는 질문은 바보같다. 미디어법은 작년에 충돌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미 타협의 여지가 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87년 민주화 이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비민주적이고 비상식적인 날치기 사태를 바라보아야 하는 기분은 참으로 착잡하다. 차라리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서민 생활' 관련 법안을 두고 이러한 사태를 겪었다면 오히려 착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진영이 기반을 두는 계급이 전혀 다른 상태라면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충돌이 벌어질 터이고 어떻든 깔끔한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모두 각자 다른 지역의 토호들을 기반으로 한 중간계급의 정당들이다. 비록 한국현대사의 역사성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민주주의에 호의적인 정도가 다르지만, 어쨌든 기반을 두는 곳은 비슷하다. 그래서 '정치적인 생존 여부'를 가르는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격렬한 갈등을 벌이지만 다른 많은 '서민 관련' 사안들에 대해서는 갈등보다 타협의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정당들이다. 물론 정부여당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1%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음은 인식해야 하지만 말이다.

미디어법은 주지하다시피 한국사회에서 권력을 영속화하려는 독점적 보수수구언론이 사활을 걸고 통과시키려 하는 법안이다. 진출 시 난항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이유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뉴미디어 시대에서 대세는 신문이 아닌 방송이다. 그래서 조중동은 적자를 무릅쓰고라도 기를 쓰고 방송에 진출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미디어법을 두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을 겪게 된 연유는 노무현 탓이 크다. 김대중도 세무조사 등을 통해 조중동을 겨냥한 공세를 편 바 있지만, 노무현은 보수수구언론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집권 기간 내내 격렬한 갈등을 벌였다. 민주당의 정통적인 지지 기반이 아닌 외곽에서 등장했기에, 노무현은 한국사회 권력지형의 본질을 위협하는 공세를 벌일 수 있었다.

근 10년 가까이 첨예한 갈등을 벌이는 속에서 조중동과 민주당의 사이는 크게 벌어졌다. 그래서 권력의 영속화를 꾀하는 조중동의 행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반MB정서를 등에 업고 정치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가운데 정부여당이 너무나 비상식적으로 나오니까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을 결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끝내 미디어법 정국이 이대로 결말을 맞는다면, 결국 민주당은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된다. 민주당 역시 중간계급의 기득권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보수정당이고, 조중동과 언제까지나 사생결단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민주당에서 노무현과 같은 아웃사이더가 다시 출현하여 민주당의 야성을 강화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조중동이 권력을 영속화할 수 있는 기반을 확실히 마련했다는 판단이 들면, 민주당은 곧바로 조중동과 화해하고자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지금의 직권상정 사태가 착잡하거니와, 차라리 날치기 사태가 벌어져도 진보 보수 간에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국현대사에서 제도정치가 파국을 맞고 그 본연의 기능을 잃었을 때,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끈 주체는 다름 아닌 시민/국민/대중/인민들이었다. 1979년 김영삼 제명 사태 때, 신민당에서는 주류의 지도자였던 김영삼이 정권에 의해 쫓겨난 틈을 타서 비주류의 이철승이 당권을 장악하려 시도했다. 만약 부마항쟁이 없었고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신민당은 결국 이철승이 장악했을 것이고 유신체제에 대한 투쟁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가만 있지 않았고 신민당은 민의의 표출을 무시하지 못했다. 1996~7년 노동법 파동 때에도 시민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정권에 큰 압박을 주었다. 김영삼 정부는 결국 노동계와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2004년 탄핵 사태 때는 뜨거운 대중 시위로 헌재에 강력한 압박을 주었다. 촛불이 없었다면 과연 헌재가 탄핵안을 쉽게 기각해버렸을까.

하필이면 그다지 반복하고 싶지 않은 역사가 다시 전개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아주 비민주적인 보수정당과 그나마 국민을 무서워하는 약간은 민주적인 보수정당이 좁은 이념지형 속에서 당연하기 그지 없는 상식적인 문제를 가지고 사생결단하는 모습이다. 민주화 이후 진작 교체되었어야 할 낡은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나마 전진하지도 못하고 멈추려 하고 있다.

기왕 반복되는 역사라면 일단 끝까지 반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멈춘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것이 낡은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일단 나아가게 해야 하고, 현대사에서 그 원동력은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실천이었다. 제도정치는 이미 그 본연의 기능을 잃었다. 국회는 이미 그 바닥을 보여주었고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 미디어법, 일단 통과되었다고 한탄하고 끝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조중동의 권력이 영속화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법안이다. 당장 그 법을 무효로 돌릴 수 없다면, 다음 정권에서 그 법을 폐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전히 희망은 있는 것이고 새로운 수레바퀴를 만들 고민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희망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터이다.

덧 : 기사를 보니 정세균 대표가 의원직을 사퇴하고, 장외투쟁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이 계속될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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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치기. 2009/07/23 16:48 #

    여당, 깡패 동원 날치기 한나라당 전여옥(田麗玉·사진) 의원은 19일 사학법 국회 통과와 관련해 “여당이 신원을 알 수 없는 깡패들까지 동원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등원을 막고 날치기 했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사학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날치기 정권의 날치기 대표”라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갈 때 신원 모를 사람들이 막고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 more

  • 민주주의여 만세 2009/07/24 00:48 #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YTN 돌발영상) 완전 개판이다. 개판이라는 말 말고 달리 할 말이 없다. 의장석 점거에 몸싸움에...심지어 투표를 종료해 놓고 수가 모자라니 종료하란 말을 하지 않았단다. 그러고는 계속 투표하라고 해서 기어이 법안을 통과시킨다. 초등학교 학급회의도 이 따위로 하지는 않는다.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YTN 돌발영상에서는 자막으로 처리했지만, 대리투표도 있었다고 한다. 대리투표의 정황증거들.. 위 글에......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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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dEye 2009/07/22 23:11 # 답글

    소중하게 지켜주지 않으면 역시 금방이라도 퇴보하고 달아나는 민주주의라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상식조차 그런 모양이군요. 지적하신 바처럼 용어만 세련돼졌을 뿐 그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 향후에 역사를 기술하면서 금번 사건은 21세기판 사사오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다가올 개헌정국인데, 그때도 과연 다수의 힘으로 무엇을 행하려고 들지 좀 걱정스럽네요. 시민사회의 조직적이고 활발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 자유로픈 2009/07/23 22:18 #

    개헌만은 한나라당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문제이죠. 게다가 개헌문제는 당분간 뒷전으로 밀릴 거 같습니다. 정부여당 측은 당분간은 내각 교체 등 국정쇄신을 고민하겠지요. 정말 미디어법은 철회되어야 할 법이고, 금융지주회사법도 당연 마찬가지인데, 국회에서는 더이상 어떤 활약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민사회의 실천만이 희망일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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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