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에 다녀왔다. 본디 굳이 가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동생이 가고싶다는 바람에 나도 같이 가게 되었다. 가면서도 노무현을 추모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역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 간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계단에서 내려오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보고 조금 마음이 뜨끔했다. 그래, 어찌 됐건 나는 상갓집에 조문하러 가는 것이구나.
어느 정도 사람이 많다고는 알고서 현장에 도착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정말로 많았다. 줄이 꼬불꼬불 어디가 끝인지 알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잖아도 후덥지근한 지하철 역사 안에 왜 그리 줄이 길게 늘어섰는지 이상하게 느꼈는데, 역시나 경찰의 통제 때문이었다. 경찰은 시청광장, 조선일보사 앞, 청계광장 이렇게 세 곳에 절대로 시민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차와 병력으로 벽을 쌓고 있었다. 그래서 추모객들의 줄이 대한문에서 세종로 쪽으로 일직선으로 뻗질 못하고 지하철 안으로 굴곡되어 들어가 기형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지하철 안은 본래도 더운 편인데 사람들로 꽉 차서 더욱 더웠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짜증내는 기색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차분한 분위기는 분향소 앞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 천명의 시민들이 모여있는데도 마치 침묵시위를 벌이는 것처럼 차분한 분위기였다. 정갈한 추모의 정을 깨뜨리는 것은 오직 분향소 주변을 억압하고 있던 경찰들의 풍경 뿐이었다.
곳곳에서 경찰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청광장 쪽으로 난 출구를 막아선 경찰들을 보며, 그리고 조선일보사 앞을 가로막아서서 줄을 꺾이게 하여 인도를 매우 혼잡하게 만든 경찰들을 보며 시민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줄의 끝이 어딘지 찾다가 서울신문사 앞까지 갔었는데, 거기에는 미처 인도와 차도 사이를 막는 차벽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줄이 길어지면서 서울신문사 앞쪽까지 이르자, 경찰들은 황급히 이동하여 인도를 고립시켰다. 마치 줄을 선 시민들이 금방이라도 도로로 뛰어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경찰들은 가히 편집증적으로 보일 정도로 시민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어이 없는 일이 아닌가. 저 너른 시청광장을 놔두고 왜 대한문 앞의 좁은 곳에서 북적북적 시민들이 불편을 겪어가며 애도를 할 수밖에 없는가. 정부는 공식 분향소를 만들어주되 '교통불편을 고려하여' 서울 외곽에 설치한다고 한다. 저 차벽들 치워버리고 시청광장 안에서만 조문하게 해주면 충분한 일이다. 뭐, 이런 얘기 해봤자 이미 정부, 경찰, 서울시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이미 공안정국이 열린 마당이니만큼, 정부와 경찰은 앞으로도 너무나 경직적인 태도로 물리적 광장 자체를 허용하지 않을 터이다. 전직 대통령의 추모를 위한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다. 광장을 열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은 더욱 높아졌지만, 일단 힘을 모아내어 그 벽을 넘기만 하면 끝장을 볼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만약 그때가 온다면, 이명박 씨, 당신이 자초한 일이니 남탓하지 마시길.
노무현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그 추모의 정을 바치는 장소가 너무나 협소하고 궁색하여 더욱 구슬퍼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내 동생은 현장에 도착하여 "너무 보기가 안 좋다. 이쁘게 꾸며주고 싶다"고 말했다. 엄혹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서로 물을 나누어주고 이야기도 나누며 추모의 장소를 꾸며나갔다. 신랄한 말과 불끈 쥔 주먹으로 경찰과 싸우려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지만, 주변의 만류로 짧은 에피소드로 끝났다. 그 장면들, 여러 방송사와 신문기자들이 취재했다.
나와 동생은 결국 본래 차려져 있던 분향소에서의 조문은 포기하고, 그 옆에 시민들이 임시로 설치한, 빨리 애도를 마치고 가야하는 시민들을 위한 임시 분향소에서 조문했다. 재활용되어 몇 사람 손을 거쳤는지도 모를 시든 조화를 바치고, 동생이 사온 노무현이 좋아했다는 담배 한 대도 같이 올렸다. 나와 함께 조문을 올린 어떤 어머니는 기다리는 내내 어린 자식에게 무언가 설명해주고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는가. 어린 아이가 그 이야기를 이해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시선과 어머니의 열정은 뇌리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기억은 그렇게 전승되어가고 있다.




덧글
나아가는자 2009/05/25 01:09 # 답글
저도 오늘(5.24)에 다녀왔습니다. 오후 3시에 가서 7시24분즈음에 절할 수 있었으니...4시간 반쯤 걸린 셈이지요. 수고많으셨고...제 생각엔 늘어선 시민의 행렬이 광화문까지 늘어서면 그 장면 자체가 여론을 반영할 것이니 이를 걱정해서 행렬을 막은것 아닌가 싶습니다. 덥고 답답한 지하에서 고생하면서 화가나는건 어쩔수 없더군요.
자유로픈 2009/05/25 23:35 #
오늘 보니 서울경찰청장이 "차벽이 병풍처럼 아늑해서 좋다고도 하더라"라고 하더군요. 염치를 짓이겨버렸다는 "파렴치"라는 말이 이렇게 어울리는 경우도 없을 겁니다.
2009/05/28 23:3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