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은 <대한민국 선거이야기>(역사비평사, 2008)에서 독재정권 시절에 치른 선거가 언뜻 보기엔 아무 쓸데 없는 것 같았어도, 가만히 돌이켜보면 현대사를 뒤흔드는 계기로 작동했다고 평가한다. 이를테면 71년 대선에서 박정희가 김대중에게 그야말로 신승을 거둔 이후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유신을 단행하게 되었고, 1978년 총선에서 야당이 여당보다 1% 더 많은 득표율(무려 유신치하에서)을 보임으로써 김영삼이 "이제 내 판이 오는구나" 생각하면서 강경투쟁에 나서고, 1년 뒤 부마항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조성되었다. 아무리 독재정권 시절이라도, 선거에서는 정치인들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었고, 형식적으로라도 표출된 민의는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고 여겼기 때문에 선거가 작지 않은 역사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의 선거라도 의미를 가질진대, 민주화 이후의 선거는 당연히 큰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선거는 민의를 반영해준다고 믿고 있고, 그것이 민주정치 게임의 규칙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비록 장기적으로 따져보면 이 시대에 진정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었고 민중이 무엇을 지향했느냐 하는 문제는 후세 역사가들과 시민들이 평가할 일이겠지만, 암튼 현실을 살아가는 정치인들과 시민들에겐 지금 당장 우리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느냐에 대해 알아야 하고, 가장 요긴한 통로로 선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일단 말로라도 "패배를 인정한다"라고 말한다. 자인하고 말 것도 없이 0:5 대패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청와대는 "지역선거에 큰 의미 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 발언을 접하면서 분노하기에 앞서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다. "나 지금 지역 선거에 매우 큰 의미 두고 있거든?"하고 소리 높여 외치는 듯한 저 표리부동을 대체 어찌해야 하나? 이명박 이하 장관들의 어이없는 반의회정치적 태도, 더 나아가 반민주정치적 태도는 분명히 엄청나게 아픈 역풍을 몰고올 것이다. 재보선은 '잽'에 불과하다.
이번 재보선을 보며 가장 기분이 좋았던 점은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이었다. 여느 재보선에 비해 투표율이 높았다는 점은 당연히 평소 선거참여 비율이 낮았던 젊은 세대가 열심히 참여했다는 뜻이다. 높은 투표율은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선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경험은 분명 10월의 재보선과 내년의 지방선거까지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 "기꺼이 표를 던질 후보만 있어다오!! 그럼 기꺼이 투표소에 갈 것이고 또 가야할 것이다"라는 인식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물론 투표율은 더 높아져야 할 터이지만, 암튼 유권자/시민들은 준비를 조금씩 갖추어나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문제는 시민들이 지향하는 여러 층위의 바람을 역동적으로 반영하여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끌 정치인들과 정당, 시민/민중운동의 자세이다. 울산 북구에서의 진보정당 간 단일화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 비록 단일화 과정에서 많은 후유증이 남았지만, 그 어떤 생채기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생채기에서 연대의 꽃을 피워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었다. 조승수 의원의 활동을 기대하며, 두 진보정당 간 연대의 노력도 계속되길 바란다.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민주대연합'의 전망은 암울하다. 당장 민주당의 내홍부터가 오리무중이다. 정동영은 당선사례에서 신속한 복당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떨런지. 내가 보기에 정동영 지지세력은 분당까지도 염두에 두고 정국에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 딴에는 참 복잡한 문제들이겠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동영의 향후 노선이다. 정동영은 당선사례에서 '민주당의 성찰'을 강조함과 동시에 '신념의 정치'를 표명했다. 반성하면서 강성 노선으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방향은 옳다. 나는 이전 글에서도 정동영의 성찰을 촉구한 바 있고, 또 지금 시점에서는 야당에서 중량감 있는 지도자가 나서 강성 노선을 걸어야 할 필요도 충분하다. 하지만 아직 미덥지는 않다. 지켜볼 일이다.
노무현 사건까지 겹쳐 민주당의 행보는 정말 오리무중이다. 앞으로 지켜볼 도리 밖에...확실한 것은 민주당은 여전히 바닥에 떨어졌다는 위기의식은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고 있는 듯하다. 정세인식이 너무 안일하다.
재보선 결과는 앞으로의 정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선거결과를 무시하기로 한 청와대의 모습을 보면, 시민사회의 분노가 더욱 커지리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당분간 내홍에 휩싸여 정국주도권을 잡지 못할 것이다. 반면 시민사회의 직접행동은 다시금 활기를 띠려 하고 있다. 선거결과를 무시하고 드라이브를 계속 걸어대려는 정부와 기껏 알려준 민의를 완전히 무시당한 시민사회는 조만간 다시 거리에서 맞부딪칠 것이다.
시민사회는 다시 정부와 맞장을 뜨면서 여러가지를 동시에 고민해야 할 처지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정치권에서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 뉴라이트를 압박할 수 있는 연대의 틀을 만들어내도록 감시하고 압박하는 역할이다. 시민사회 대 정부의 '2차 대전'이 내년 지방선거의 '승리'로써 성과를 맺을 수 있도록, 즉 작년의 '1차 대전' 처럼 실패하지 않도록 진보적 시민사회와 개혁적 제도정치권 간의 연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개진한 바 있던 '통일전선'에 관한 본인의 정세인식은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여전히 압박하면서 같이 가야할 대상이고, 진보정당들은 시민사회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해가면서 지역 풀뿌리 민주주의를 책임져야 할 주체들이다. 지지할 정당이 없다고 가만 손 놓으면서 마음공부나 하고 있으면 그게 될 일인가. 마음껏 토론하면서 현재의 진보적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또 마음껏 요구하면서 그 시대정신을 담당할 대표 정치인들을 육성해야 할 책임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 2009/04/30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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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촛불 또 연행, 노동절, 그리고 한나라당 재보궐선거 완패 2009/04/30 12:10 #
열심히 서명운동을 받고 있는 '촛불총각' 님(사진 : 박김형준) 수원 촛불 1명이 또 연행되었습니다. 어제 수원 촛불 문화제가 끝나고 같이 뒷풀이까지 하던 '촛불총각'님이 오늘 아침 압수수색을 당하고 체포되어 보안수사대로 이송중이라고 합니다. 어제 밤까지 같이 술마시던 분이 연행되었다고 하니,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이제는 좀 조용한가 싶었는데, 역시나 그들은 누구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잡아갑니다. 내일은 내가 되려나...하는 두려움...... more




덧글
나아가는자 2009/05/01 02:07 # 답글
진보신당의 원내진출에 기뻐했지만...역시 시작일 따름이지요.
자유로픈 2009/05/01 19:39 #
창당 1년만에 어렵사리 원내진출 한 건 축하할 일입니다. 조승수 의원에게 과부하가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당신 스스로 의지를 밝힌 만큼 선전을 기대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