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한국사를 보는 시각


뒷북치는 4.19 포스팅(살짝 수정) - 역사학에서 개념의 노정



어떤 사건에 대한 용어를 살피는데 있어 가장 먼저 알아볼 문제는 당대에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불렀는가 하는 것이다. 4월혁명 당시에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는데, 당시부터 '혁명'이란 용어를 광범하게 사용했다. '4월 혁명', '4월 의거', '3·4월 민중항쟁', 민중 봉기', '학생 혁명', '민족 혁명'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는데, 주로 '4월 혁명'이란 용어를 썼고 모든 정부 공식 문서에도 그렇게 표기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이 4월혁명에 대해 얼마나 절절한 심정으로 '혁명'이란 수사를 붙였는지 김수영의 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서비스 차원에서;;;; 김수영의 시 한 편 인용해본다. 안구정화 한 번 해보자. 아래 시는 4월혁명 직후 발표한 <푸른 하늘을>이다.

출처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詩人의 말은 修正되어야 한다.

自由를 위해서
飛翔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自由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4월혁명을바라보는 여러 시각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학술적 차원에서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각 이념·정치노선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4월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보는 시각이다. 당시 민주당 장면 정권의 시각이기도 했다. 그들은 4월혁명이 이승만의 독재에 반대하여 온전한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민중의 투쟁이라고 평가하고, 거리낌없이 '혁명'이라고 불렀다. 당시 진보세력과 같이 '혁명'이라고 불렀으되, 생각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두번째는 진보적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4월혁명을 '미완의 혁명'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던 시각이었다. 당시의 진보세력들은 분단시대에서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생각하고 있었고,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던 혁명의 공간에서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평화통일 논의를 선도적으로 제기하고 있었다. 흔히 '민족주의의 고양'이라고 평하는 시기를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는 쿠데타로 인하여 좌절되고 말았다. 4월혁명을 통해 열어제낀 민주주의를 민족통일로 마무리짓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미완의 혁명'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세번째는 80년대 중반 변혁이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시각으로, 4월 혁명을 '민주주의와 진정한 민족해방의 실현을 위한 미완의 민중혁명이었으며 민중 자신이 아닌 학생에 의한 대리혁명'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4월혁명의 계기가 경제위기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승만정권 시기의 경제위기는 종속적 자본주의가 파탄나면서 비롯된 위기였으며, 이에 대해 자본가세력은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위한 변혁을, 민중은 제 모순을 극복한 새로운 변혁의 길을 찾기 위해 혁명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념적으로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대 민족경제, 세력으로는 자본가·군부 대 학생·민중의 대립으로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박정희정권이 수립됨으로써 한국사회는 신식국독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견해이다.

네번째는 60년대 이후 꾸준히 계속된 민족민주운동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4월혁명을 민주화운동와 민족통일운동의 서막을 연 '항쟁'으로 보는 시각이다. 마치 광주항쟁, 87년 6월 민주항쟁이라 정의하는 관점과 같은 것이다. 이 시각은 두번째 시각과도 유사한 것으로서, 당시에도 이러한 시각이 존재하고 있었다. 1961년 4월 19일 혁명 1주년을 맞아 진보적 청년 단체였던 민주민족청년동맹에서 발표한 성명서가 이러한 시각을 대변하는데, 그 내용을 인용해본다.

집권자 및 그 주변세력들과 어용학자 및 몰지각한 일부 학생 단체들은 '4.19혁명', 또는 '4월 혁명' 운운으로써 동포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혁명이란 경제·사회·정치의 사회 전반적인 변혁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때 변혁된 것이 무엇이며 발전된 것이 무엇인가? (중략) 3·4월 항쟁에서 뿌려진 붉은 피는 수많은 선열의 민족 항쟁의 피를 이어받고 2.8투쟁과 광주 학생 투쟁의 그 투혼을 이어받은 '3·4월 민족 항쟁'이었다. 이 민족항쟁은 3·4월로 그친 것이 아니요, 그 후에도 항진하고 있었으며,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하여 민족통일이 쟁취되어 민족혁명이 완수되는 그날까지 줄기찬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다.

최근의 학계에서는 여러 논의들이 대체로 세번째와 네번째의 시각으로 수렴되어 양립하고 있다고 한다. 엄밀한 학술적 정의로써 따지자면 '혁명'이란 용어가 적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사회의 특성상 4월혁명이 갖는 지향점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혁명'이란 용어를 사용하자는 견해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런 이유로 논쟁은 현재까지도 정리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4월혁명에 대한 성격문제는 시대상황에 따라 계속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결론을 대신하며, 4월혁명에 대해 우리는 '의거'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될까?

4월혁명이 '의거'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를 '5.16군사혁명'으로 미화하면서 당시 널리 사용되던 '4월 혁명'을 '의거'로 격하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후 한동안 4월혁명이 '혁명'이냐 '의거'냐를 두고 논쟁이 있었지만, 군사정권이 몰락한 현재 이런 논쟁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앞서 소개했듯이, 한국의 보수세력은 4월혁명을 기꺼이 '혁명'이라고 불렀고, 그래서 '의거'로 격하되었던 4월혁명은 김영삼 정부 때 다시 '혁명'으로 격상되었다.

4월혁명을 '의거'로 부르자는 일부 블로거들은 그럼 보수도 아니고 뭘까? 학계와 시민사회, 정치권의 인식을 뒤엎어보려는 발상은 창의적이긴 하나 별로 쓸데있는 것 같진 않다. '혁명'이나 '항쟁'이냐를 가지고 논쟁해보자면 충분히 해 볼 의향은 있다.


4월혁명을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다음 글 참고 : 정창현, <민주와 통일운동의 결합 : 끝나지 않은 미완의 혁명 4.19>, 내일을 여는 역사 8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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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 의거" 명명은 과연 박정희의 장난일까? 2009/04/22 18:09 #

    ☞ 자유로픈씨의 글에서 트랙백 4.19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논자가 인용한 김수영의 詩니 뭐니 그런 군더더기는 일단 관심없고, 필요한 부분만 얘기해 보는게 좋을 것 같다. 우선 글쓴이의 편견이 목도되는 얘기들이 있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월혁명 당시에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는데, 당시부터 '혁명'이란 용어를 광범하게 사용했다. '4월 혁명', '4월 의거', '3·4월 민중항쟁', 민중 봉기', '...... more

덧글

  • 한단인 2009/04/22 00:54 # 답글

    오우.. 1빠로 잘 읽었다능..

    혁명이냐 항쟁이냐.. 비단 4.19 말고도 다른 혁명들(이를테면 68 혁명같은)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을 듯...
  • 자유로픈 2009/04/22 00:55 #

    비교사가 재밌기는 합니다만, 공부가 많이 필요한지라 선뜻 용기가 안 나지요 ^^;;
  • 한단인 2009/04/22 00:58 # 답글

    전 게으르기 때문에 남에게 잘 떠맡기는 몹쓸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응?) 자유로픈님은 제 낚시질에 낚이시질 않으시군요.. OTL
  • 자유로픈 2009/04/22 23:50 #

    저 역시 서양사에 대해서는 과문합니다...
  • 解明 2009/04/22 01:26 # 답글

    오, 김수영 시인. ㅠㅠ
  • 자유로픈 2009/04/22 23:56 #

    저도 오랜만에 떠올렸습니다.
  • StarSeeker 2009/04/22 07:21 # 답글

    한국의 정치변동을 쓰신 김영명씨는 4.19가(문민정부에 의해) 혁명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이전 체제(독재를한 이승만정권도 기본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하기 있었기에)와는 확연히 달라진게 없고, 이후 사후처리도 흐지부지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 분은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뜻으로 봉기라고 정의를 하고 계시더군요...
  • 자유로픈 2009/04/22 23:55 #

    본 글에서 제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고, 인용한 당시의 성명서에서도 언급했듯이, 엄밀하게 따지자면 '혁명'이란 용어는 타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지적에 동감하긴 합니다.

    저는 본격적으로 현대사를 공부하기 이전, 그러니까 중고등학생 때부터 으레 '혁명'이라 불러왔고 여전히 그 관점을 굳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계속 부르고 있지만, 사실 역사학자들의 논문들을 살펴보면 '혁명'이라 지칭하는 경우보다는 그냥 '4.19'라거나 '4.19운동' 정도로 지칭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더군요. 학술적 정의로서 '혁명'이 온당하지 않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 마지막천사 2009/04/22 08:12 # 답글

    시민 혁명의 일환으로 봐야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뭐 정의를 내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엄연히 민주주의를 위해 일으켰던 국민적인 운동이었으니 제생각에는 혁명이 맞을듯 하네요.
  • ㅋㅋㅋ 2009/04/27 12:53 # 삭제 답글

    진명행 글 좀 반론해 보시죠.
  • 자유로픈 2009/04/28 00:29 #

    제 글의 논지를 정면으로 반박한 글도 아니고, 이미 답이 나와있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도 쓸데있는 일은 아니라 생각해서요, 별다른 포스팅을 할 의지가 생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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