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어제와 내일 同時代史를 헤치며

올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러했겠지만 나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래 수많은 집회에 참여해왔었고, 특히 2002년과 2004년에도 촛불집회를 경험했었지만, 올해의 촛불은 확실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촛불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어떤 역사적 전환점에 서있다는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2008년의 촛불은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역사적인 계기로 작동할 것인가? 확실한 것은 향후의 한국사회가 어떻게 바뀌든 2008년의 촛불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결과일 것은 자명하다. 향후 한국사회가 좋은 쪽으로 바뀌게 될 수도 있고 나쁘게 바뀔 수도 있는데 두 경우 모두 촛불의 영향이 미치리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엄연히 2008년의 촛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화로 인해 형성된 '87년 체제'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87년체제의 아래로부터의 종언', 즉 어떤 새로운 시대는 촛불로부터 조금씩 피어나고 있다. 과연 촛불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궁금하기 짝이 없다. 2008년의 촛불에서 내가 느낀 경험을 정리하는 작업은, 그래서 에필로그가 아닌 '小結'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썼던 글들을 회상하며 촛불의 어제와 내일에 관한 나의 생각을 써보고자 한다.


1. 새로운 시민사회의 탄생을 알리다

그렇다. 올해의 촛불이 한국의 시민사회가 뭔가 바뀌어도 크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살펴보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외형적으로 보면 국가와 일대일로 맞장을 떴던 시민사회의 역사는 사실 새롭지 않다. 87년의 거창했던 민주항쟁 말고도 21세기에만 2000년 낙천낙선운동, 2002년의 미선효순 촛불, 2004년의 탄핵반대 촛불의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내실로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올해의 촛불이 새로운 시민사회의 탄생을 알리는 서곡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새로운 민주광장을 만들어낸 주체가 비조직화된 중고등학생/여성이었다는 점이다. 87년 민주항쟁은 재야 민족민주운동세력과 급진적 학생운동세력이 주도하고 시민들과 야당이 합류한 형태였다. 민주화 이후 전개된 시민사회의 행동 역시 주체가 시민운동/민족민주운동세력 등으로 조금 변화되었을 뿐,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얼개는 오프라인의 소수 운동세력이 주도하는 형태였다.

21세기에 들어 한국사회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이는 시민사회의 정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2000년 낙천낙선운동 때 인터넷 공론이 낙선운동을 정당화하는데 일익을 담당했고, 2002년에는 노사모의 인터넷 여론 주도가 노풍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대선 직전에 터진 미선효순 촛불 역시 인터넷 공론의 공분이 영향을 미쳤다. 04년의 탄핵반대 촛불 역시 인터넷의 영향은 컸다. 일례로 디씨인사이드는 '물은 셀프' 등의 유행어들을 생산하며 인터넷공론을 주도하기도 했다. 집회에서 개벽이, 개죽이의 그림이 박힌 디씨 깃발을 보고 굉장히 놀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08년의 촛불은 바야흐로 인터넷공론이 시민사회의 결집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촛불집회 초기에 오마이뉴스의 오연호씨가 느꼈다는 충격이 새삼 기억난다. 그는 촛불집회가 처음 열렸던 때,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았다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중고등학생 수 만 명을 마주치고는 너무 놀랐다고 했다. 여론의 흐름에 민감했던 어른 조차도 인터넷이란 정보의 바닷속을 복류하던 '그들'의 분노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촛불소녀'라고 부르는, 그동안 민주주의광장의 주변인으로 머물렀던 그들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목도하면서도 소심하게 굴던 '어른들'을 질타하며 민주주의 광장을 다시금 열어제꼈다. 07년 대선과 08년 4월총선의 패배를 겪고 의기소침해 있던 기성세대들은 뼈저린 반성을 하고 바통을 넘겨받아 민주광장에 합류했다. 아무런 전망도 보이지 않던 시기, 민주화를 전후하여 태어난 젊은 세대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감성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시민사회의 한 주체임을 당당히 선포했다. 2008년 촛불은 그들의 화려한 데뷔무대였다. 그리고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 새로운 촛불시민민주주의의 성격

1) 권력을 즐겁게 비꼬고 조롱하다 : 폭력보다 더욱 강력한 '비폭력', 그 이름은 시민불복종!!


편의상 촛불시민민주주의라고 이름붙여보자. 촛불에서 드러난 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성격은 어떨까. 나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집회양상을 놀라워했는데, 몇 가지 단상을 떠올려본다. 핵심키워드는 권력을 즐겁게 조롱하는 '비폭력'의 실천, 이름하여 '시민불복종'이다.

87년과 2008년의 분위기를 대조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행사의 부당함에 대한 인식수준은 비슷하다고 보인다.(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의 수준이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부당한 폭력이 문제가 있고 크게 바뀌어야한다는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어있다는 뜻이다.) 다만 87년의 투쟁문화는 남성주의적이었고, 군사독재의 폭력에 오랫동안 저항해오면서 역설적이게도 그 폭력적인 문화를 닮아갔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재야의 운동조직 역시 일사불란의 수직적인 위계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투쟁방식에서 폭력보다는 비폭력을 우선하는 원칙은 존재했다. 한국의 반정부시위가 가진 특징은 외국처럼 시위대가 각종 기물을 훼손하고 건물을 습격하는 형태의 무질서가 크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87년 당시에도 전경이 고립되거나 하면 시민들은 전경을 순순히 풀어주곤 했다.

2008년의 촛불에서는 정권의 폭력에 폭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강경론과 비폭력을 견지해야 한다는 온건론이 공존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폭력의 정의가 무엇인지, 폭력 행사의 정당성은 어떤 조건에서 확보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번 촛불에서 불거졌던 폭력-비폭력 논쟁이 최초의 사례이다. 그점에서도 촛불은 큰 의의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번의 촛불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강경론보다 온건론을 채택한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권력의 행사방식이 비민주적이긴 했으나, 그 권력이 어쨌든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뽑은 정당한 절차에 의한 권력이었기에 폭력을 동원하여 정권을 교체할 명분이 적었다. 이 점은 2004년 촛불과도 연결되는 면이다. 당시 시민들은 임기가 얼마 남지도 않았고 그닥 잘한 것도 없는 입법권력이 앞길 창창한 행정권력을 끌어내리려는 시도에 대해 분노했다. 둘 다 시민의 손으로 선출한 권력이었기에, 둘 중 누가누가 더 잘하나에 대한 판단도 시민의 몫이지 자기들끼리의 권력다툼으로 결정한 사안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정치를 아무리 싫다 싫다 해도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합의를 폭넓게 이루고 그 금도를 지키려는 한국민주주의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의 요인은,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좀더 부드럽고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졌다는 점이다. 바로 인터넷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런 비판의식을 표출할 통로가 매우 적었고, 그나마 그 통로도 시민적으로 공유된 것이라기 보다는 소수의 진보세력의 노력으로 뚫어낸 것이었기에, 비판의식의 표출은 집단적인 형태를 띠었고 군중심리에 의한 과격성도 담보했다. 쉽게 말해 친구가 옆에서 두드려맞고 피흘리고 죽어가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분노를 표출할 길이 별로 없으니 거리로 뛰쳐나와 집단적으로 그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공론을 통한 분노의 표출은 더 다원적으로 표현될 수 있고, 이른바 집단지성이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더욱 부드럽고도 강력하게 그 분노를 승화시킬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다원적이고 풍자적인 분노가 예전의 집단적이고 즉자적인 분노에 비해 별로 안 무섭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두고볼 일이다.

나는 '닭장투어'로 상징되는 광범위한 시민불복종을 지켜보면서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시민들이 전경에게 순순히 웃으면서 잡혀가는 행위가 겉보기에는 부드럽게만 보일지 몰라도 그 용기의 수준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정당하다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웃으면서 상대를 비꼴 수 있는 것이고, 인터넷은 그러한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게다가 시민들은 그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예전의 진보진영은 독재권력을 비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닮아갔지만, 지금의 촛불은 결코 그들의 적을 닮아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물론, 언론과 인터넷이 재갈을 물게 되면 장담할 수 없는 일.....ㅡㅜ

그런 의미에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각종 쓰레기법들, 특히 언론장악에 저항하는 투쟁은 위에 언급한 촛불시민민주주의의 본령을 잇는 절박한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승리하고 더욱 전진하여 한국사회가 당면한 양극화를 해소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촛불시민들이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주 : 시민불복종이란, 쉽게 표현하면 시민운동에서 비폭력을 견지하되 비합법을 불사하는 투쟁방식을 이르는 개념이다. 촛불은 정말 예술적으로 시민불복종을 실천했다. 그렇기에 시민들은 우리들이 정당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2) 나를 때리는 놈이 누군지 다시금 정확히 인식하다 : 뉴라이트와 조중동에 대한 분노

촛불정국에서 광우병 다음으로 뜨겁게 불붙었던 이슈가 언론문제이다. 촛불시민들은 자신의 행동을 비상식적이고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조중동에 대해 유례없는 비난을 쏟아부었다. 긴 세월동안 진행된 안티조선운동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반조중동 운동(언론소비자주권운동을 포함하는)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방송이 촛불을 제대로 보도하는지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었다.

'기억'은 '역사'가 된다. 촛불시민은 촛불의 기억이 진실되게 기록되는지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시민/대중/민중의 기억들이 진실되게 기록된 적은 거의 없다. 언제나 반민주독재세력에 의해 왜곡되었다. 87년 민주화 이후 역사바로세우기가 진전되며 기억왜곡의 경향은 다소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반민주-수구세력의 여론/기억 왜곡은 심각한 폐해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시민들은 민주화가 준 작은 열매에 만족하는 듯 보였으며, 조중동은 여전히 한국언론을 독점하며 절대권력으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촛불은 그러한 여론독점과 기억왜곡에 균열을 내었다. 촛불은 조중동이라는 반민주독재세력의 후신이 여전히 한국민주주의를 농단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울러 뉴라이트의 실체를 정확히 깨달았다. '새로운 보수'라는 미사여구로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넘어 '선진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뉴라이트의 주장이 '헛소리'임을 정확히 인식한 것은 촛불의 또다른 커다란 의의이다.

촛불이 바라는 세상이 어떤 것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뉴라이트와 조중동이 활개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만은 깨달았다는
점은 촛불시민민주주의가 정치사회적으로 퇴보할 가능성은 일단 크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지금의 언론자유를 둘러싼 싸움에서 져버리고 만다면 역시 전망은 암울하다......ㅡㅜ

덧붙여 언급할 문제는 조중동-뉴라이트와 한나라당의 관계에 대한 촛불의 관점이다. 전자는 크게 보면 이념/사상을 전파하는 사회집단이고 후자는 이념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정치집단이다. 내가 보기에는 촛불시민들은 대개 둘의 연결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콘크리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단순히 촛불의 모순으로 폄하하지 말고 세심하게 분석해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한나라당의 역량 측면이라기보다는 민주당/진보정당 등 구체적인 대안 정치세력의 부재 측면에서 바라보는 게 적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기사회생한 진보진영, 잘 해봐!!

촛불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진보진영 땡잡았네!!'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대선과 총선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진보진영은 당장의 앞길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촛불은 진보진영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1919년의 3.1운동은 항일운동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어주었고, 이후 수 십 년동안 갖은 탄압을 견디며 민족해방운동이 진전하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이처럼 대중의 폭발적인 정치참여는 시대의 모순을 타개하고자 하는 진보진영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게 마련이고, 2008년의 촛불 역시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앞길은 여전히 밝지 않다. 참여정부의 실정에 도매금으로 묶여 비판받았고 선거에서 심판받았던 진보진영은, 촛불집회에서도 여전히 좋은 소리만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촛불은 진보진영의 미래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그 기대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고 그 기대를 담보할 정치주체는 누가 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 계속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촛불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촛불이 바라는 세상은 아직 멀리 있다는 사실만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소위 '깃발'과 '시민'의 관계맺음은 현재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 '깃발'에는 시민단체도 있고 사회단체도 있고, 구체적인 정치세력으로서는 민주당도 있고 민주노동당도 있고 진보신당도 있다. 그들 '깃발'들은 일괄적으로 포괄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게다가 '촛불시민' 역시 어떤 하나의 정체성을 견지하고 있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둘의 관계맺음은 쉽게 전망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촛불시민'의 정체성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작업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역사적인 관점에서 구명되어야 할 성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국의 시민/민중은 어떻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끌고나가야 한다고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여전히 일부 진보진영에서 보이는 행태이다. 촛불시민의 목소리는 반미자주의 목소리만도 아니고 반신자유주의의 목소리만도 아니다.

촛불시민들은 어쨌든 다양한 주장을 광장에서 표출했고, '깃발'은 그 목소리들을 들었다. 지금도 목소리들은 표출되고 있고 진보진영은 듣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지금 진보진영에게 제기된 시급한 과제는 그 목소리들을 '열린 자세'로 듣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촛불이 진보진영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은 촛불정국에서 경험한 '시민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지지'에서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다. 촛불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영향력있게 만들 수 있는 통로로 노동운동과의 연대를 인정했다는 점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고생이 집회연단에서 "노동자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빨리 끝내달라. 우리가 응원할 테니 노동자 여러분들도 지치지 말고 싸워달라." 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이후의 역사서에도 기록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치 있는 발언이다. 아직은 결론짓기 힘들지만 언론노조의 투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시민/민중운동 진영은 이러한 촛불의 의지를 담보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촛불과 시민/사회운동과의 연대 수준에 비해 촛불과 정당과의 연대는 좀 더 지켜봐야할 여지가 남아있다. 촛불의 정당에 대한 지지는 정당 그자체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강기갑 개인에 대한 지지나, 칼라티비 같은 색다른 활동에 대한 호응과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는 지금까지 가시적인 진전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들은 진보정당의 수권능력을 의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진보정당의 존재 자체가 아직도 생경한 것일까? 진보정당활동에 한미한 나는 잘 모르겠다.

일단 현재 진보진영은 정부여당에 대항할 능력이 딸린다고 보고, 세력의 만회를 위해 대동단결을 외치고 있다.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일단 결성되었으나 앞길은 불투명하다. 가장 큰 이유는 진보진영 내부의 각 세력 간에 노선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한국만의 특수성이 아니며 한국사에서도 현재만의 특수성은 아니다. 지금의 악법철폐 투쟁과정에서 통일전선은 진전될 기미도 조금 보이고 있으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상층부의 이합집산에 의한 정치공학적 해결방식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반MB' 통일전선 자체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 결성 방식이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통일전선은 정당성을 얻는 것이고 그 파괴력 역시 작지 않을 것이다. 통일전선의 의미는 이념적인 명분을 살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힘으로써 성과를 창출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일전선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추이에 따라 통일전선은 이명박의 레임덕과 민주주의의 진전을 담보해 낼 수 있는 강력한 기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통일전선에 기대를 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따로 글을 써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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