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을 읽으면서 얕은 단상들

차라리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샐러리맨이면 블로그 운영하기가 편할 것 같다. 길든 짧든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말이다. 생활이 불규칙한 대학원생이다보니 오히려 블로그 운영하기가 불편하다. 매일 한번씩 들어와보긴 하지만 여유가 없으니 긴 글도 못 쓰겠고 그렇다고 잡담이나 올리기도 어색하다. 이웃 블로그들 마실다니며 댓글 달 여유조차 없으니 말 다했다.

한동안 돈에 눈이 어두워;; 돈벌이에 탐닉하느라 블로그를 버려두었다. 잉크가 눌려 잘 보이지도 않는 글자를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며 해독하고 교정을 한지 근 한 달이 되어간다. 돌이켜보니 지난 한 달 동안 마치 1940년대 말의 '대한민국'에서 살았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내가 해독한 글자들은 어느새 내 머릿속을 떠다니며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들어온 이미지, 이야기들과 뒤섞이며 흐릿한 영상들을 만들어낸다.

1949년 2월, 신문 사회면의 절반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와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반민법) 소식이다. 거의 매일같이 친일행위를 했다는 누군가가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고, 수감되고, 조사받고 있다. 거물이 잡히면 너도나도 죄상을 고발하겠다고 수십 명이 증언자로 나선다. 자유신문은 누군가 체포될 때마다 그 '민족정기'라는 것-가뜩이나 적을 글자도 부족한 작은 지면에 쓸데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수없이 등장하는-이 조금씩 회복되는 것 마냥 반민특위를 찬양하기 바쁘다. 이승만정부는 이즈음 반민특위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반민특위를 주도하는 국회 소장파 의원들은 얼굴을 붉히고 극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이승만을 비판한다. 국회는 연일 조용히 하시오, 내려오시오 야단이다. 그래도 몸싸움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분위기는 한국 국회 못지않게 험악해도 몸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영국 국회가 연상된다.

신문에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말해주는 큼지막한 이야기만 있을리는 없다. 이를테면 체육란, 교정작업이라는 목적을 따지면 그리 정성들여 살필 까닭은 없는 기사들이지만, 그래도 한 번씩은 눈길이 간다. 내가 당대의 사회상에 무지한 탓이지만, 그때도 별의별 스포츠가 다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 놀란다. 육상, 야구, 농구, 축구, 배구, 정구 등은 물론이요, 국내에서 미식축구대회가 열리고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선수권에 선수가 몇 명이나 참가했다. 심지어 '대한스키협회'가 주관하는 전국남녀스키대회도 열렸다. 그때는 당최 어떤 옷차림으로 스키를 탔을까.

이전글에서 1949년 6월 이후의 남한 정세를 언급하며 암울한 분위기를 내보였지만, 어쨌든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살아나갔고, 즐거운 일들도 많았을 것이다. 다만 신문 지면에서는 그 즐거움을 발견하기 어렵다. 지면으로 나타난 이야기들은 거의가 암울한 것들 뿐이고, 독자는 그 암울한 이야기의 행간 속에서 행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취해내야 한다. 내가 본 정부수립 이후의 남한 사회는 그런 사회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받은 작업본은 1951년도의 것이다. 작업본 첫날 신문 1면의 머릿기사에는 큼지막한 글자로 선명하게 '敵'이 찍혀 있다. 정전회담에서 '적'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아 주목된다는 머릿기사이다. 1년도 지나지 않은 새에 신문 지면에서 '이북', 혹은 '북한'이라 불렸던 대상이 이때는 '적'이라 불리고 있었다. 아마도 행복한 이야기들을 발견하기가 더 어려울 터인 신문 지면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래도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하는 게 일이다. 모르고서 끝내 행복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정치연합과 지방선거, 그리고 우리들 젊은 세대의 투표. 同時代史를 헤치며

오늘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의 연합정치 관련 인터뷰를 보았는데, 투표참여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그 방법들 중에는 대학 내 부재자투표소 설치운동도 제시되어 있다.

"한나라당 몽땅 떨어뜨리는 게 제1목표"(이정희 인터뷰, 오마이뉴스, 2010-01-20)

대학 내 부재자투표소는 2002년 대선 때 처음 설치되었다. 신청인이 일정 수를 넘어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대학에 설치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다니던 서울대에는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되었다. 정확한 통계는 찾을 수 없었는데, 당시 풍문으로는 투표율이 거의 80%를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한국의 여느 젊은이들처럼 서울대생들 역시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고, 투표소를 찾아간 대학생들 중 태반은 노무현을 찍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였던 권영길도 많이 찍었을 테지만 말이다.

이후로 2004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 때에도 대학 내 부재자투표소 설치 운동은 꾸준히 전개되었다. 하지만 전체 투표율의 저하와 함께 부재자투표소 설치 운동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2004년 17대 총선 때에는 전국적으로 12개 대학에서 설치되었지만,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고작 3곳에 설치되었을 뿐이다.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46.0%였다. 이 투표율은 월드컵 열풍이 불었던 시기에 치러진 2002년 지방선거의 투표율(48.9%)보다도 낮은 것이었다. 2008년 총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은 겨우 28.1%에 불과했다. 3명 중 1명도 투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수치는 2000년대 치러진 다른 선거들의 그것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치였다.(16대 대선 56.5%, 17대 총선 44.7%, 17대 대선 46.6%)

그간의 사회 동향으로 미루어볼 때 투표장에 등을 돌렸던 20대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진보개혁 성향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진보-개혁 진영에서는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를 강조하곤 했다. 이정희 의원이 이번에 다시 강조한 맥락도 비슷할 것이다. 최근에는 대학생 유권자들의 힘을 보여준 실례도 있다. 지난 10월 수원 장안에서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대학생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하여 투표율도 끌어올리고 진보개혁진영에 힘도 실어주었다.

위_2002년 대선 때 서울대 학생들이 부재자 투표를 하고 있는 모습. 아래_2004년 4·15총선을 앞두고 부재자 투표소 유치를 위한 신청을 받고 있는 연세대 학생들. (출처-"부재자투표 어떻게 하는거야?", 위클리경향, 2007-12-11)


주지하다시피 올해 치러질 지방선거는 연합정치가 가장 커다란 화두이며 목표이다. 20대는 30-40대의 386세대와 함께 2000년대 진보-개혁진영의 기반을 구성했던 대표적인 집단이었다. 진보-개혁진영의 성장과 진보적 재구성을 목표로 하는 연합정치의 원동력 역시 이들 집단에서 나와야 한다. 어떤 수준의 연합정치가 성사되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20대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가야 한다. 20대의 투표참여는 현재 연합정치 운동의 중요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지방선거는 6월에 치러진다. 무언가를 해보기에는 결코 넉넉치 않은 시간이다. 정당이 주도하고 시민단체가 개입하는 제도정치 영역에서의 연합정치 논의는 지금도 숨가쁘게 흘러가고 있지만 2월, 3월이 되면 더욱 빠르게 전개될 것이다. 논쟁하고 합의해야 할 정책과제가 한둘이 아니고, 타격대상이 되는 그들은 끊임없이 탄압하고 흔들어댈 것이다. 6월까지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그때까지 20대 유권자들, 대학생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생각해볼 수 있는 과제는 앞으로 논의될 정치연합의 공동정책과제에 학자금 문제를 비롯한 대학생들의 복지 문제,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방안이 가능한 우선적인 정책이 되도록 요구하는 일이다. 사실 이 문제는 현재도 많이 논의되고 있고, 민주당 역시 합의하고 양보할 여지를 많이 가진 문제이다. 대학생들의 요구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표출된다면 충분히 공동정책강령에 반영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설마 지금 대학생들이 취업후 상환제라는 자그마한 '콩고물'에 만족할 수 있는 여유로운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하나, 이정희 의원이 제기한 부재자투표소 설치 운동이 있다. 만약 앞으로 정치연합 논의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전되어 나간다면, 지방선거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 그 '바람'은 분명 20대 유권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인데, 그것을 구체적인 힘으로 모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대학 내 부재자투표소 설치이리라 생각한다.

지금 대학사회에서 투표참여운동을 위한 논의가 얼만큼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짐작건대 분명 지방선거를 앞두고 생각들은 하고 있겠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기획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대학내 운동조직들이 지방선거 투표 참여를 중요한 투쟁목표로 설정하고 부재자투표소 설치 운동을 고민하길 바란다. 생활정치가 활성화되어있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선거는 시민들의 정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기회이다. 그것은 젊은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물론 정치조직별로 뭐다 뭐다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적 목표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최대한 합의 수준을 낮추고 최대한 많은 이들이 모여 투표참여운동을 전개하며 등록금과 같은 복지 이슈를 제기하는 방향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간이 충분치 않다. 부재자투표소 설치 문제는 대학사회 안팎의 여러 정치집단들이 개입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조율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지방선거는 노무현 1주기 직후에 치러진다. 나는 그때쯤이 되면 아마도 1년 전 대한문 분향소에서 그의 영정 앞에 시든 국화를 바쳤던 마음으로 투표소로 향할 것이다.(이 표현이 꼭 민주당이나 혹은 국민참여당을 뽑으리라는 말이 아님은 물론이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후배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리라 여긴다. 하지만 그때는 대학 기말고사 기간이기도 하다. 재작년 촛불 때도 그랬지만, 민주주의는 기말고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재자투표소 설치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다. 정치연합 성공하면 뭘하나. 투표 못하면 말짱 꽝인걸.


'강심장 신문' 한겨레의 지난 기억 한 토막, 그리고 현재 同時代史를 헤치며

자기 전에 한겨레에 들어가보니 '사법개혁'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적나라하게 편집된 대문을 접했다. 적나라하다는 말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기사, 사설들이 직접 링크까지 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겨레에 자주 들어가는 편이지만 이런 경우는 자주 보지 못한 것 같다.

2010년 1월 20일 02:23 현재 한겨레 대문


엉뚱할지도 모르지만 문득 2001년 한국사회를 휩쓸었던 언론개혁문제가 기억난다. 김대중 정부와 조중동의 사이가 점점 나빠져가고 있던 상황에서, 한겨레가 언론개혁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조중동을 향해 공격의 포문을 열어제꼈다. 당시 선배들이 오오 한겨레 드디어 일 냈네 하면서 수근대었던 기억도 난다. 뭣도 모르던 철부지였던 나는 언론개혁운동이 시작될 때 그 문제의 중대성과 폭발력을 미처 예감하지 못했었다. 결국 나는 그해 내내 언론개혁문제로 포화가 빗발치는 지면들을 접하면서 신문들이 왜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지, 그것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공부했었다.

당시 진보-보수 신문들간에는 언론법 개정문제나 언론사 세무조사문제 등을 둘러싸고 그야말로 노골적인 비난이 뒤섞인 난타전이 벌어졌다. 나는 언론개혁문제 덕분에 신문이라는 대중매체가 겉으로 표방하는 중립성과 공정성 따위의 가치 속에는 정말로 복잡한 정치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었다. 조중동이라는 신문이 어떤 존재인지 차츰 알게 되면서, 당시 어렸던 나의 눈에는 골리앗을 상대로 힘겨운 돌팔매질을 해대는 다윗 같은 한겨레가 정말 매력적인 신문으로 보였다.

2001년의 그 진흙탕 싸움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처음에 워낙 충격적인 싸움을 접한 탓에 이제는 신문들간의 논조 투쟁이 너무나 여상스러운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마 나의 뒷 세대들은 2008년 촛불 때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왜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지, 왜 조중동은 그딴 얘기들을 하는지 분노했고, 촛불시위 내내 언론 비판이 비등했었다.

첫인상은 뇌리에 각인되어서일까,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한겨레는 여전히 나에게 매력적인 신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저기서 비판도 많이 받는 것 같다. 비단 한겨레만이 아닌 현재 언론계 전부가 연루되어 있는 측면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한겨레와 같은 진보 성향의 언론들이 직면한 난제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최근 강준만이 한국 언론과 한겨레가 직면한 문제들을 제시한 논쟁적인 칼럼을 한겨레에 기고했다.

'이명박 비판을 넘어서'(강준만, 한겨레, 2010-01-17)

강준만은 한겨레가 적을 향한 증오심을 선동하며 진영논리를 강화하는 '강심장 신문'이 되어서는 안 되고 지난 행적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차분한 논조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주장의 전제에는 한겨레가 그동안 무언가 만들어놓은 것들이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분명 한겨레는 김대중 정부 수립 이후 민주당-열린우리당 정부와 발걸음을 맞추어 왔고, 그 과거에 무언가 어두운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성찰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타당한 논리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역시 별문제일 것이다. 지금 접한 저 대문을 보면서, 나는 한겨레는 아마도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돌아가고 싶은 생각 자체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한겨레 역시 나처럼 옛날에 그 진흙탕 싸움의 기억을 뇌리 어딘가에 담아두고 있는 것일까.

언론개혁문제로 내내 시끄러웠던 2001년은 시기적으로 보면 낙천낙선운동의 바람이 불었던 2000년과 노사모로 대표되는 인터넷정치의 바람이 불었던, 그것이 결국 대선의 노풍으로 귀결되었던 2002년의 사이였다. 서로가 절대 물러서지 않았던 진흙탕 여론 투쟁에서 활로를 연 것은, 어느 한 쪽의 기성 언론매체가 아니라 그 시기에 본격적으로 태동한 '인터넷 공론장'이라는 새로운 여론 공간이었다. 2001년의 언론개혁운동이 새로운 공론장의 출현에 끼친 영향이나 그것과 맺은 관계는 쉽게 단정하기 힘든 연구가 필요한 주제라고 보인다. 다만 어느 정도는 언론개혁운동이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보전하고 새로운 공론장의 형성을 추동하는 일정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나의 앝은 내공으로 단정하기는 섣부를지도 모르지만, 2001년의 언론개혁운동은 여론 공간에서 줄곧 열세에 놓여 있던 진보진영이 벌였던 기념비적인 첫 공세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보면 공세를 주도하는 한 축이었던 김대중 정부가 정권 말기의 레임덕에 빠져 힘을 잃으면서 언론법 개정문제를 비롯한 언론개혁은 온전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암튼 '민심'이라는 보수진영이 독점해오다시피 해온 여론 공간에 맞서는 '넷심'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여론 공간을 창출해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였달까, 암튼 진보진영은 본진을 강화했고 멀티를 건설하여 확장에 성공했다. 다만 확장된 이후 내실을 다지는 문제는 별개이고, 그것이 바로 강준만이 지적한 자기성찰의 문제일 터이다.

2010년 벽두부터 연합정치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논의의 정치적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율로 정의되는 '민심'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정의되는 '넷심'의 괴리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연합정치론의 두 축인 민주연합론과 진보연합론은 요컨대 그놈의 '민심'이라는 여론 공간을 잡기 위한 두 가지 방법론이라 할 것이다. 참 여러 논점이 숨어 있고, 쉽게 풀기 힘든 문제이다. 민주 정부 10년 동안 '민심'을 둘러싼 권력 지형도 바뀌었고, '넷심'도 역사적 변천을 겪었다.

일단 논의의 출발은 민주당의 태도문제일 터이다. 2001년 민주당은 우여곡절 끝에 '넷심'을 끌어안는 정당개혁을 성사했고, 결국 그 힘을 바탕으로 보수독점의 '민심'에 파열음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어떨까. 묻지 않아줬으면 하는 과거도 많고, 무시하기엔 껄끄러울 만큼 성장한 진보정당도 있다. 한편으로는 2001년의 '넷심'처럼 언제든 폭발하려고 불끈불끈하는 새로운 '성장동력'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인터넷 세상에서 2001년과 2010년은 구석기와 산업혁명 시대의 차이와 같은 간극을 가졌다 할 수 있다. '넷심'의 조직화는 그 난이도의 차원이 달라졌다. 민주당 혼자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민주당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민주당의 선택은 곧 한겨레의 선택과도 맞닿아 있을 터이다. 지난날의 '화려한 과거'에 얼마만큼 얽매여야 적당한 것일까. 한겨레의 주장대로 지금 한국사회는 '무차별 색깔 공세'가 벌어지고(대문의 카피) 집권 여당이 삼권분립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허물려 하는(한겨레 사설), '화려한 과거'를 되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암담한 상황으로 파묻혀가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고,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일은 없다. 한겨레가, 민주당이, 연합정치를 모색하는 이들이 들어야 할 목소리들은 분명 과거의 그것과는 무언가 다른 음색일 것이다. 부디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 언론들이, 들어야 하는 순간에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을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참고

2001년 언론개혁운동의 자취를 찾아보려면, 언론재단 기사검색으로 들어가 2001년~2002년의 기간을 설정하고 '언론개혁'으로 검색해보면 된다.

2001~2002년 민주당의 정당개혁에 관해서는 예전에 본인이 쓴 글이 있다.

나의 독서 취향 테스트 얕은 단상들

나의 독서 취향 테스트(페이비언™)

독서취향 테스트하는 곳

성향을 구별해주는 이런 테스트에서 내가 보수주의자로 분류된 경우는 이게 처음이 아닌가 싶다. 왠지 맞아보인다. 정치 성향 테스트는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생활을 영위하는데 안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수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내가 사는 동네에는 매우 많은 밥집이 있지만 내가 가는 곳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아무데나 적당히 들어가 끼니를 때우는 일은 거의 없다.

독서 취향도 비교적 정확하게 맞췄다고 느낀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가 심취했던 책들은 이런저런 과학 교양도서와 역사 교양도서, 아시모프의 SF소설, 이문열 삼국지,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비롯한 무협소설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들 등이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거의 역사 학술서와 사회과학서적들밖에 읽은 기억이 없는데, 돌이켜보니 대학생 시절에는 공부는 책으로 하고 유희는 컴퓨터 게임이나 영상물로 해결하는 생활을 했다. 책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유희를 즐겼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시간을 내어 소설을 좀 즐겨볼까.

취향 설명 다른 취향 보기

사막은 지구 표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기후대로, 매년 빠른 속도로 넓어지고 있다. 동식물의 생존에 무자비한 환경이긴 하지만 놀랍게도 사막엔 수많은 생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가혹한 사막의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물과 에너지의 사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극도로 실용적이고 보수적인 행동 패턴을 보인다.

실용주의, 현실주의, 냉정한 보수주의. 이는 당신의 책 취향에게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

  • 목마른 낙타가 물을 찾듯이:
    낙타가 사막에서 물을 찾듯이, 책을 고를 때도 실용주의가 적용됨. 빙빙 돌려 말하거나, 심하게 은유적이거나, 감상적인 내용은 질색. 본론부터 간단히. 쿨하고,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내용을 선호함.

  • 들어는 봤나, 하드보일드:
    책이란 무릇 어떠한 감정에 흔들려서도 안되며,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이성적으로 쓰여져야 함. 사실주의 소설, 다큐멘터리 기법의 역사책, 인물 평전 같은 건조한 사실 기반 내용을 좋아하는 편.

  • 문화적 유목민:
    사실주의 역사 책만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다양한 책을 섭렵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특별히 일관된 선호 기준이 없음. (아예 좋다 싫다 취향이 없는 경우도 있음.) 뭔가 볼만한 책을 찾기 위해 '방황'을 많이 하는 독자층.

당신의 취향은 지구 대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사막 기후처럼 전체 출판 시장의 상당수를 차지하며, 그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로맨스 소설이나 시 같은 픽션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취향이기도 합니다.

다음의 당신 취향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은 작가들입니다.


빌 밸린저

그의 이름은 루, 두 번째 이름은 이제부터 이야기할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 생전에 그는 마술사였다. 기적을 만드는 사람, 요술쟁이, 환상을 연출하는 사람 말이다. 그는 아주 솜씨 좋은 마술사였는데도, 일찍 죽은 탓에 위에서 언급한 다른 이들만큼의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성취한 인물이었다.
첫째, 그는 살인범에게 복수했다.
둘째, 그는 살인을 실행했다.
셋째, 그는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 이와 손톱 中


베르나르 베르베르

"사람들은 하느님을 오해하고 있다네. 그 오해는 애초에 누군가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이지. 가는 귀를 먹은 예언자 하나가 <하느님은 위무르(익살)이시다>라는 말을 <하느님은 아무르(사랑)이시다>라는 말로 잘못 알아들은 걸쎄. 모든 것 속에 웃음이 있다네. 죽음도 예외는 아니지. 나는 내가 소경이 된 것을 하느님의 익살로 받아들인다네."
- 타나토노트 中

위화
"이 자식들아, 니들 양심은 개에게 갖다 주었냐. 너희 아버지를 그렇게 말하다니. 너희 아버지는 피를 팔아서 번 돈을 전부 너희들을 위해서 썼는데, 너희들은 너희 아버지가 피를 팔아 키운 거란 말이다. 생각들 좀 해봐. 흉년 든 그해에 집에서 맨날 옥수수죽만 먹었을때 너희들 얼굴에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어서 너희 아버지가 피를 팔아 너희들 국수 사 주셨잖니. 이젠 완전히 잊어먹었구나...(중략)...일락이 네가 상해 병원해 입원해 있었을때.집안에 돈이 없어서 너희 아버지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면서 피를 파셨다. 한 번 팔면 석 달은 쉬어야 하는데, 너 살리려고 자기 목숨은 신경도 쓰지 않고, 사흘 걸러 닷새 걸러 한번씩 피를 파셨단 말이다.송림에서는 돌아가실 뻔도 했는데 일락이 네가 그일을 잊어버렸다니...이자식들아 너희 양심은 개새끼가 물어 갔다더냐."
- 허삼관 매혈기 中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時間' - 1949년과 2010년 한국사를 보는 시각

새해 첫째 주는 학과 신년하례나 이런저런 신년모임을 쫓아다니는 사이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가뜩이나 새해인데 오랜만의 귀성, 그리고 귀경 직후 맞은 대설 등의 사건들 때문에 마음도 싱숭생숭해져 공부도 제대로 안 했다. 마음이 들뜬 김에 이런저런 영상물들이나 찾아보면서 시간을 죽이다보니 더욱 빨리 지나가 버린 것 같다. 그나마 들뜬 마음을 잠시나마 주저앉히고 하염없이 스쳐가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자각하는 순간은 뉴스를 볼 때 뿐이었다. 눈 속에 파묻혀 시간도 멈추고 삶도 그대로인 것 같았던 서울이지만 사건은 많고 말도 많다.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고 있는 2010년의 시간은 한국사회에서는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갈 것이다. 지금의 시간이 기왕의 많은 아픔을 담고 있는 시간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2010년 한국사회의 시간은 그 아픔들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시간이기에 갈수록 무거워질 터이다. 하루 하루가 더 많은 의미를 담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기득권을 굳건히 하고 반동을 강하게 하는 일에 진력할 것이고, 결국 갈등은 폭발할 것이다. 하루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갈 것이 확연히 예상되는 2010년,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비단 지방선거와 연합정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뜻은 아니다. 물론 연합정치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다. 한국현대정치사에서 비판적지지론과 정치중립론을 뛰어넘어 정치체제의 진보를 제도화해내기 위한 진보-개혁적인 제 정당-시민사회의 새로운 연대방식을 만들어나가는 문제이다. '87년 체제' 20여 년의 반성에서 비롯된 고민이며, 무언가 새롭고 더 나은 민주주의체제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고민이다. 분명 다사다난할 2010년의 시간 대부분을 잡아먹을 문제이며 이후 형성될 한국사회의 새로운 흐름에 작지 않은 토대가 될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0년에는 이 연합정치 문제 속에서, 혹은 그 문제 밖에서 또 다른, 어쩌면 더욱 거대한 변화의 씨앗이 움틀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 변화는 '좋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나쁠' 수도 있다.

요즘 아르바이트로 <自由新聞> 교정작업을 하고 있다. 자유신문은 해방직후 창간된 많은 신문들 중 하나로, 중도파의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에 호응했던 신문이지만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에는 논조도 변화하고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시기는 1949년 10월이다. 정치사적으로 구분하자면, 1949년 6월 김구가 암살당하고 반민특위가 무력화된 이후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사이의 시기이다. 국내에서는 평화통일 논의와 같은 진보적 흐름은 뿌리가 뽑히고 반공논리가 지배해나가고 있었으며, 국외에서는 냉전이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남한사회는 국내외적으로 반동에 휩쓸리며 머지 않은 미래의 전쟁에 직면하는 상황이었다. 60년, 정확히 한 갑자 전의 한국사회는 그러했던 것이다.

단 두 면으로 이루어진 이 신문 속 대부분의 기사들은, 바로 그러한 반동의 형성을 넌지시 말해주는 것들이다. 중국대륙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이 나라의 승인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적인 갈등이 불거져간다. 아시아에서 '중공'이 등장함에 따라 남한-중국(대만)-필리핀-인도를 축으로 한 '태평양반공동맹' 논의도 불붙는다. 이승만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미 간에는 반공전선의 형성을 위한 군사원조 논의가 한창이다. 유럽에서는 동독정부가 수립되어 동서독 간의 갈등이 커져간다. 유고슬라비아는 티토의 지도 아래 소련과 격렬하게 대립하며 독자노선을 천명하고, 인도 역시 독자노선을 모색해나가고 있다. 유엔에서는 원자탄을 관리하는 체제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은 전쟁 억지를 위해 원자탄의 우위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유포하고, 소련은 원자탄 개발에 성공한다.

국내 기사로는 반란지구의 '폭도', '반도'(빨치산들을 뜻한다)를 진압했다는 기사, 국가기관 내의 좌익분자를 숙청했다는 기사, 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되었던 '반민자'들을 무죄로 석방했다는 기사, 가짜 경무대 비서실장, 가짜 군부정보원이 횡행하며 횡포를 부리다 적발되었다는 기사, 38선에서 무력충돌이 있었다는 기사 등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민중의 생활은 여전히 험난하다. 군부는 기밀 유지를 이유로 용산 해방촌을 철거하여 1,000여 가구를 가차없이 내쫓아버렸다. 신문은 엄동설한이 다가오는데 대책도 없이 내쫓으면 어떡하냐고 묻고 있다. 정부는 쌀 배급가를 뚜렷한 대책 없이 인상했다. 신문은 빈곤한 서민층에게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겨울을 앞두고 연료비도 급격히 올라 한 달 쓸 연료비가 월급을 능가할 정도이고, 배추값도 급등하여 김장하기가 무섭다.

이 모든 움직임들은 결과적으로 보면 닥쳐올 파국을 암시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신문을 보면서 그 파국을 피할 길은 정녕 없었던가 하는 상상을 해보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적어도 1949년 6월 이후의 흐름은 되돌리기 힘든 것이었다. 오히려 신문이 미처 보지 못하고 붓을 놀리지 못한 곳에서는 전쟁이 점차 '형성'되어가는 와중이었다. 암울한 정국에서 민중은 힘들게 '결핍'을 감당하고 있었다. 1949년의 추석은 양력 10월 6일이었다. 신문이 추석 명절을 묘사하는 표현은 '모자람', '섭섭함', '서글픔'이다. 왜놈들의 멸시에 쥐여지내며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다가 드디어 나라를 만들고 두 번째 맞이하는 추석이지만, 신문은 도저히 지면에서 즐거움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 추석을 보도하는 기사들은 언제나 온겨레가 모두 모여 웃음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통일된 날은 언제 오리-냐고 물으면서 끝맺고 있다. 그 추석날의 이모저모를 다룬 기사 바로 옆에는 '다가올 풍운에 대비하여 태세를 정비하는' 국군의 위용을 칭찬하는 기사가 자리 잡고 있다.

60년 전의 신문기사들을 훑어보면서 우리가 살아나갈 2010년이 나중에는 어떻게 기억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나중에 우리가 기억할 2010년의 역사적 인과관계는 과연 어떠한 흐름이 되어 있을까. 이미 우리는 뉴스 속에서 수많은 모자람과 섭섭함과 서글픔을 읽고 있다. 이 슬픔들을 언젠가는 치유하고 보상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리라 믿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도 해야 한다. 하필이면 군당국이 용산의 해방촌을 철거하는 방침을 세웠다는 1949년 10월 2일자의 기사를 보고 그때와 지금을 같이 돌이켜보게 되었다. 하필이면 그때나 지금이나 용산은 소외된 자들의 땅이었던 것이다.

참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나는 그때의 신문을 읽으면서 민망하게도 낙관을 가지게 되어버린다. 지금부터 그 어떤 나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 시절보다는 나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이후 긴 시간 동안, 우리의 앞 세대들은 정말 많은 것들을 바꿔왔다는 말도 된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들이 아무리 망가뜨리고 싶어해도 그럴 수 없는 민주주의와 남북평화의 토대가 남아 있고, 그 덕택에 우리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비판할 수 있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그 언론자유의 통로를 지키고 무엇이 잘못 되어가고 있는지 공부하고 더 나은 길을 찾아가는 일이다. 많은 의미가 담길 2010년의 시간, 상처를 치유하고 가해자들에게 합당한 징벌을 내릴 수 있는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2010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정말 내 예감대로 2010년이 거대한 변화의 시간이라면, 혹은 그러한 시간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우리의 책임은 무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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