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장관 "대동아전쟁" 발언 논란(오마이뉴스)
유인촌 장관의 발언은 일단은 '말실수'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어떤 확고한 신념으로 이 용어를 사용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기사에서 비판하는대로 역사인식이 '천박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다. 적어도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대동아전쟁' 대신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가 더욱 널리 쓰이고 있고, 후자가 그나마 '탈식민적인' 용어이다. 아마 유인촌 장관은 예전에 어디선가 언뜻 본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쓴 모양인데, 이번 해프닝을 계기로 역사 공부를 좀 해야할 터이다. 더불어 이번 사건을 보며 우리 역시 자신의 인식을 되짚어보면 전화위복도 되리라. 초록불 님 포스팅과 덧글을 보면 위 오마이뉴스 기사의 소스가 신뢰도가 낮다는 지적이 있다. 이 점을 부기해둔다.
나는 '태평양전쟁'이라고 생각해왔다. 나 역시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유포되는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한일관계사를 공부하면서,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그 전쟁을 '아시아-태평양 전쟁'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도 무언가 문제점이 있다는 뜻이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링크한 오마이뉴스 기사에서는 '대동아전쟁'의 정의를 제대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저 '일본의 침략전쟁(태평양전쟁)'이라고 간략하게 정의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 어디서 벌어진 전쟁이며 누가 일으키고 누구와 싸운 전쟁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다른 신문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마 대동소이할 것이라 생각한다. 바쁜 기자들이 굳이 해프닝에 가까운 이 기사를 가지고 심층 연구할 여유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대동아전쟁'은 주지하다시피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논리로써 정의한 용어이다. 일본은 19세기 후반 식민지 침탈을 시작하면서 '아시아연대론' 등의 논리들을 운위하면서 침략을 합리화했다. 동양의 황인종들은 서양 백인종의 제국주의 침탈에 저항하여 연대를 이루어 싸워야 하는데, 그 저항의 선두에는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나서야 하고 일본의 선도 아래 모든 황인종이 뭉쳐야 한다는 논리가 바로 '대동아공영'의 논리이다.
일본이 '대동아전쟁'이라 부른 전쟁은 바로 1941년 진주만 침공으로부터 비롯되어 1945년 8월까지 전개되었던 일본과 미국간의 전쟁을 뜻한다. 이때 일본은 귀축미영(鬼畜米英)을 부르짖으며 서구 백인종들의 침탈로부터 동양 민족들을 해방시키는 '해방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이러한 주장은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실제 그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지지를 얻기도 했다.
'태평양전쟁'이란 용어는 바로 이 '대동아전쟁'이란 용어에서 최대한 '대동아공영'이라는 침략사상을 탈각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제시된 용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본과 미국이 맞붙은 주된 전장이었던 태평양이란 중립적인 지리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다만 침략 사상의 배제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일본이 1941년 미국을 침공함으로써 주로 태평양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이라는 용어의 범주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태평양전쟁'이란 용어도 문제가 있다는 견해는, 그 전쟁의 범주도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 1941년 일으킨 대미전쟁은 길게 보면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일본 대외 침략사의 한 부분이고, 좀 더 엄밀하게 보면 1931년 만주 침략으로부터 비롯된 중국 전역에서의 전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본으로 하여금 미국 침공을 결단케 한 직접적인 원인인 미국의 대일 금수 조치가 일본의 중국침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사회에서는 대체로 '태평양전쟁'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는데, 그 현상이 지닌 함의는 우리의 경우보다 자못 복잡하고 무겁다. 일본인들이 '태평양전쟁'이란 용어를 쓸 경우, 그것은 일본의 전쟁 행위를 1941년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를 나누어 본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일본의 중국침략과 태평양전쟁을 서로 관계가 없는 행위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실제 이렇게 구분하려는 인식은 1945년 '종전' 직후부터 꾸준히 만들어지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지배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왜 실제와 다른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을까?
거두절미 하고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일본인들이 대미전쟁으로 인한 피해자의식은 강렬하게 느끼면서도 지난 제국주의 침략을 저질렀다는 가해자의식은 제대로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피해자의식은 일견 이해할 만 하다. 일본 정부가 무리한 전쟁을 수행하면서 전시 총동원 체제를 가동했기 때문에, 일본 민중의 삶은 매우 고달팠다. 전시동원은 193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1941년 이후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일본인들에게는 공습의 기억과 원폭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다. 일본인들에게는 미국과의 전쟁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사회는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하여 지난 식민지 침탈의 역사는 거의 망각하게 되었다.(짧게 풀기는 어려운 주제이다) 태평양전쟁이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 역시 조작, 왜곡, 은폐되었다. 그 작업을 주도한 주체들이 있었으며, 대다수 일본 민중은 그러한 왜곡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문제 역시 짧게 풀기는 어려운 주제이다. 일본인들이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들 중에서 '우리는 당신들에게 패한 것이지 중국과 조선에 패한 것이 아니다', '중국인(대만인)과 조선인들이 마치 자기들이 승리자인 것 마냥 오만하게 구는 게 경멸스럽다'라는 주장들이 많이 발견된다는 사례만 언급해둔다.
암튼 이렇게 가해자의식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1941년 시작된 태평양전쟁과 그 이전의 사건들이 구분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일본인들이 쓰는 '태평양전쟁'이란 용어에는 식민지 침략 기억의 망각이라는, 우리에게는 아쉽기 그지없는 요소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본의 중국 침략과 대미전쟁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태평양전쟁관을 가진 연구자들은 대미전쟁을 분석하면서 태평양전선만 다루고 중국전선은 다루지 않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연구 경향을 비판하는 이들은 중국전선이 일본의 전쟁수행에 커다란 부담을 지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비록 중국전선에서 일본군은 정규전에서는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중국 인민과 조선 인민들이 줄기차게 벌인 게릴라전으로 인해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 전역에서 미군과 혈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수십만 명의 일본군이 중국전선에서 발을 뺄 수가 없었다. 일본이 미국을 침공하게 된 정치적 배경이나 군사적으로 고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면,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는 역시 사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용어라고 보아야 한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학계 일각에서 '대동아전쟁'과 '태평양전쟁' 용어를 비판하면서 부르고 있는 용어이다. 연구해보면 어떤 더 적합한 용어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암튼 일제 식민지기 간단없이 전개되었던 민족해방운동을 기억하고자 하는 우리들이라면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보다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이라는 용어를 쓰는 일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일본의 패전 후, 미국은 조선을 연합국으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패전국, 즉 적국의 일원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미국에게 조선인들은 '해방민족'이자 '적국민'이기도 했던 것이다. 실제 자의든 타의든 전쟁에 협력했던 조선인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히 할 말이 있고, 또 열심히 할 말을 해야 할 터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과연 전쟁이 무엇이었으며 또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를 차분히 되물어보아야 한다. 미국이 말했듯이 '태평양전쟁'에 가해자로 참전했던 역사가 있었고, 유인촌 장관도 말했듯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억압받는 민족으로서 나름대로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역사도 있었다. 우리는 그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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